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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가망신’ 호통 뒤에 숨는 불공정 ‘카르텔’

2026-01-30 13:00:03 게재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쿠팡으로 이직한 직원을 만나면 패가망신할 줄 알라고 했다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불공정은 정부 정책 효과를 송두리 채 파괴하는 독소여서 장관의 서슬 퍼런 일침은 당연하고 신선하기까지 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생존을 위한 고액 채용이라는 기업의 비자발적 선택을 나무랄 수도 없고 이직한 직원과 현직의 소통을 차단할 방법도, 소용도 별로 없다. 잠시 멈칫할 뿐이다.

2022년 1월 쿠팡 충남 천안물류센터 접안 도크에 정차한 화물차에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은 채 하차한 운전자가 자신의 차에 치어 사망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고 잠금 장치가 의문이긴 하나 사고 정황 상 사고원인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의무 위반은 없지 싶다. 그럼에도 언론과 정치적 비난에 수년에 걸친 장기 수사와 중대재해 후속 규제로 피의자들과 기업은 심각한 정신적, 물적 피해를 받았다. 불공정 규제가 부지불식간에 음지의 카르텔을 만들어 낸다.

재량권 오남용이 불공정

건설현장에서 자재를 들어 회전 중인 크레인이 근처에 쌓아놓은 다른 자재를 밀었고 밀려 떨어진 자재에 근처를 지나던 작업자가 깔려 사망한 사건을 상정해 보자. 이 경우 ●전면 작업중지 ●전체 건설기계 사용작업 중지 ●사고에 사용됐던 크레인 사용중지 ●자재 운반작업 중지 등 내용과 범위에 따라 기업의 손실은 천차만별이다. 이런 행정 재량권의 오남용 여지가 불공정의 근원이다.

과거 D건설사 현장 중대재해에 감독관청은 작업중지에 더해 관할 지역 전체 11개 현장에 안전진단을 명했다. 건설사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진단에 평소 대비 30~40배의 비용을 지불했다. 아파트 골조공사 중에 수백개의 파이프 서포트 설치와 해체, 위층으로 운반이 반복된다.

해체한 서포트는 벽에 기대어 세워놓는 것이 일반이고 그로 인해 발생된 중대재해 사례는 없다. 시정 기회도 없이 일반 감독 대비 수십배의 과태료가 부과되는 특별감독에서 이렇게 기대놓은 수 많은 서포트 각각을 안전규칙 제3조 전도방지 조치 위반으로 적발한 경우도 있다.

수단이 목적이 된 규제

행정규제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중대재해 발생 후 작업중지, 진단명령, 해제 심의 행정규제 세트는 오래 전 안전조치를 누락한 채 작업을 재개해 같은 중대재해가 재발했던 사고를 계기로 제정된 동종재해 재발방지가 목적인 규제다. 40여년 전 건설현장 작업자들의 안전모 미착용이 통상적이었던 시기에 일어난 사고다. 그런 사고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폐업을 각오하지 않고는 어림없는 일이다. 목적이 소멸된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해 집행되고 있다. 이런 비효율 행정 세트는 전세계적으로 찾아 보기 어렵다.

최근 노동부는 진단명령 제한, 적발 건 동의 확인, 각종 명령 전 대상 사업장의 의견을 받는 절차 등 재량권 통제 고려한 내부 통제를 하고 있다고 한다. 현실을 외면한 탁상행정이다. 수세에 몰린 입장과 재량권 앞에 어쩔 수 없는 ‘침묵’을 ‘자의적 합의’로 포장해 재량권 오남용을 정당화하는 방패로 쓰일 뿐이다.

재량권 오남용도 처벌 아닌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관점과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작업자의 실수는 작업 조건과 환경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재량권 오용과 남용은 공무원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규제 시스템의 결함이다.

예를 들자면, 특별감독에서 위반 적발은 과거 동일 작업조건에서 발생한 재해 사례에서 인과가 입증된 내용을 전제로 하고 전문가들의 교차검증으로 불공정을 해소할 수 있다. 효과를 알 수 규제 방식들이 오랜 기간 방치돼 왔다. 혁신의 핵심은 객관적인 효과가 입증된 방식과 현장의 피드백으로 행정 방식을 지속 보완시킬 시스템 구축과 작동이다.

위험 직무에 걸맞은 보상이 시스템에 포함되야 한다. 책임에 비해 보상이 적은 환경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당한 통로를 통한 보상 유혹에 취약해 진다. 전문성과 공정 수당 등으로 ‘뒷거래 한탕’보다 ‘현직의 명예’가 더 매력적인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행정 개혁은 공무원의 도덕책을 새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설계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이다. 감독관을 전문성 부족과 비리의 유혹이라는 ‘위험’에 방치해 둔 채 산재 감소를 기대할 수 없다. 권한 분산, 과정의 투명성, 내용의 합리성을 지속 증진시킬 행정 시스템이 노동자의 생명과 공직자의 명예를 동시에 지키는 길이다. 시스템이 곧 도덕이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