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칼럼
‘이기적 유전자’는 졌다, 한국에서
대형 서점의 ‘과학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이기적 유전자’가 올라가 있는 걸 보면, 이런 역설이 있나 싶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 책이 한국에서 절찬리에 소비될 이유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유효 기간은 한국에서 끝났다. 1977년에 나왔을 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파괴력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초반을 지나 중반을 향해 가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의 주장은 울림이 크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인가, 생각해 보자.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 문장은 “유전자가 우리 몸을 만들었으며, 우리 몸은 유전자를 위한 운반차량”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세대를 건너 이동하면서 불멸하고자 하는 게 유전자의 꿈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몸의 주인은 유전자이며, ‘내'가 아니라는 거다. 이때 '나'는 나의 뇌를 말한다.
유전자와 뇌의 관계가 무엇이던가? ‘뇌’는 유전자가 만든 생물학적인 도구다. 유전자는 생식세포 안에 들어 있을 뿐, 그가 타고 있는 ‘운반 차량’에게 어떻게 행동하라고 즉각적으로 지시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응급 상황에 대응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유전자는 ‘뇌’를 만들었다.
자신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행동을 하라는 프로그램을 뇌에 입력해놓고,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상황에 대한 대처는 ‘뇌’에 일임했다. 뇌는 유전자의 대리인이다. 우리가 짝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행동은 유전자의 사전 입력을 뇌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뇌가 유전자 프로그래밍을 따르지 않을 때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보면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 메시지는 부정되었다. 유전자의 목표는 번식인데, 많은 사람의 뇌가 유전자 프로그래밍을 따르지 않고 있다.
번식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 말고도 일부 선진국도 그렇다. 이로 인해 국가소멸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뇌의 반란으로 인한 생각지 못한 상황이다. 유전자가 만들었는데, 뇌가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있나?
뇌 역시 생존과 번식이 목표이나,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할 때는 ‘번식’을 포기하고 ‘생존’을 택한다. 뇌 관점에서는 ‘생존’이 최우선이며, 번식은 생존이 담보된 이후에 고려되는 장기적인 목표다. 뇌는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기관이므로, 개체가 살아남아야만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는 먹이가 부족하거나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번식 활동(성적 욕구)을 억제하고 생존에 자원을 집중시킨다.
한국에서 많은 20~40대의 뇌는 현재 환경이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위험하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고 판단하고 있고, 유전자의 번식 스위치를 강제로 내린 상태다. 뇌는 ‘번식’을 ‘자원 낭비’로 간주하고 생존을 위한 ‘효율성’에만 집중하고 있다.
반려동물 열풍은 유전자가 아이를 잘 키우라고 설계한 ‘양육 본능’이 경로를 이탈한 결과다. 어린이를 돌볼 때 분비되어야 할 옥시토신을 ‘반려동물’에 마음을 쏟아 얻어내고 있다. 유전자 입장에서는 대가 끊기는 황당한 실책이다.
결국 ‘이기적 유전자’는 ‘이기적 뇌’에 패한 게 분명하다. 생물학적으로 높은 지위를 유전자는 뇌에 내줬다. 유전자는 뒤로 물러나고 뇌가 조종 핸들을 돌리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기적 뇌’의 시대가 되었다.
이런데도 ‘이기적 유전자’는 왜 베스트셀러인가? ‘탈 유전자’사회를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되는 책이라는 게 분명해졌으니, 베스트셀러 자리에서는 내려와야 한다. ‘서울대학교 권장도서 100선’(2005년 발표)에 들어있기 때문에 많이 팔린다는 건 안다. 부모들이 자신들은 읽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읽으라고 사주는 책이다.
서울대가 권장도서 목록을 업데이트하던지 해서 이 흐름을 바꿔야 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이제 ‘종의 기원’과 같이 진화생물학의 고전, 즉 스테디셀러라는 자리로 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 그 너머’를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인구 감소 추세를 역전시키려면 방안을 죽을 힘을 다해 찾아내야 한다.
대통령은 2027년, 2028년 신생아 목표가 몇 명인지, 정량적인 수치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정성적인’ 접근법은 효과가 없다. 수 백 조원을 썼으나, 어디로 갔는지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다.
AI초지능이 우리를 대체할지도
국민이 알아듣기 힘들고,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수)과 같은 모호한 수치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몇 명 태어나는 해로 만들겠다고 말해야 한다.
더구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 지능을 곧 압도한다고 한다. 우리가 생물학적인 출산을 하지 않는다면, AI초지능이 생존과 번식 게임에서 우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 변화가 너무 숨 가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