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서 '백제 유물' 최대 규모로 발굴
16차 발굴조사 결과 … 백제 국가 체계 재편 실증 자료 출토
백제 사비기 왕궁 유적으로 알려진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관악기와 대량의 목간(나무 문서)이 출토되면서 백제의 궁중 음악과 국가 운영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국시대 실물 관악기가 발견된 첫 사례이며 목간의 경우 국내 단일 유적에서 확인된 최대 수량이자 국가 행정문서로 가치가 높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충남 부여군과 함께 진행 중인 부여 관북리 유적 16차 발굴조사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공개하는 조사 성과 공개회를 열었다. 부여 관북리 유적은 부소산 남쪽 넓고 평탄한 대지에 위치해 있으며 1982년부터 발굴조사가 이어져 왔다. 대형 건물지와 수로 시설, 도로 흔적 등이 확인돼 사비기 왕궁 유적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16차 발굴조사는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진행됐으며 삭설(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 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를 포함해 총 329점의 목간과 관악기 ‘횡적’ 1점이 출토됐다.
이들 목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비 천도 이후 백제가 어떤 방식으로 국가 체계를 재편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 자료다. 출토된 목간에는 인사 임명 기록과 국가 재정 장부, 중앙과 지방의 행정 체계를 보여주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경신년(540년)’과 ‘계해년(543년)’이라는 연대가 확인돼 백제가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로 수도를 옮긴 538년 직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식량을 기록하는 등 국가 재정 운영과 관련된 장부 목간과 함께 사비도성 중앙 행정 구역인 5부와 방-군-성 지방 행정 체계 재편 과정을 보여주는 목간도 다수 출토됐다. 도성 행정 단위인 ‘상 전 중 하 후부’ 5부를 기록한 목간, 지방행정 단위인 ‘웅진 하서군’ ‘나라 요비성’ 등 새로운 지명도 확인돼 당시 국가운영 체계를 엿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여겨온 ‘전(畑)’ 자 등이 적힌 목간은 백제의 선진적 문화와 동아시아의 활발한 대외 교류를 보여준다.
행정과 재정 기록뿐 아니라 당시 궁중의 문화 생활을 보여주는 유물도 함께 확인됐다. 횡적은 7세기 건물지 인근 직사각형 구덩이(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크기)에서 출토됐다. 대나무로 만든 악기로 몸통에 네개의 구멍이 일렬로 뚫려 있었으며 일부는 부서지고 납작하게 눌린 상태였다. 남아 있는 길이는 약 22㎝다.
횡적이 발견될 구덩이 내부의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인체 기생충란이 함께 검출된 것으로 볼 때 조당에 부속된 화장실 시설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됐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