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시대 노동의 품격

2026-02-10 13:00:02 게재

배석태 동명대 대외협력부총장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있다.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금융 제조 물류 의료 등 거의 모든 산업 현장에서 이미 활용되며 우리의 일하는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대출 심사와 고객 상담에 AI가 도입되었고, 제조 현장에서는 스마트 공정 관리와 자동화가 일상이 되었다. 최근 국내 제조업 현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투입된 사례는 AI와 자동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기술발전이 곧바로 노동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산업 현장에서는 경험과 숙련, 그리고 현장 판단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 제조공정에서도 AI가 결함탐지와 공정최적화를 지원하지만 최종 결정과 미세 조정은 여전히 숙련자의 몫이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 노동의 역할은 사라지기보다 더욱 정교해진다.

AI 시대 노동의 핵심 과제는 기술과 사람이 대립하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은 교육과 자격 체계다. 무엇을 배우고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하며, 그 능력을 사회가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분명해야 노동은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최근 직업교육 현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교육은 단순 기능훈련을 넘어 AI와 자동화를 전제로 한 공정이해, 데이터 기반 판단능력, 신기술 환경에서의 안전과 윤리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산업 변화에 대응하는 노동 역량을 체계적으로 준비하려는 움직임이다.

직업교육과 함께 국가 차원의 기술자격 체계 역시 변화가 요구된다.

과거 자격증이 숙련의 결과를 확인하는 수단이었다면 이제 자격은 신기술 환경에서 실제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자동화 설비 운용, 스마트 안전관리, 데이터 활용능력 같은 새로운 직무 역량이 자격기준에 반영될 때 자격은 노동의 신뢰도를 담보하는 사회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교육과 자격이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역량이 교육과정에 반영되고, 교육을 통해 길러진 능력이 자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개인에게는 준비의 방향을 제시하고 산업현장에는 인력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교육과 자격의 정교화와 가속화는 AI 시대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핵심 인프라다.

이제 AI는 노동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는 도구다.

정책의 초점 역시 기술 도입 자체가 아니라 노동이 존중받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정부가 AI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면 교육·자격·고용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현장 노동자가 새로운 기술을 자신의 역량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단기성과 중심의 기술 경쟁을 넘어 평생직업 역량개발과 공정한 평가체계를 강화할 때, 노동은 소모되는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주체가 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키우고 보호하며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래를 지탱하는 힘은 여전히 노동이며, 그 노동의 품격을 지켜내는 것이 곧 국가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