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제사상 없는 설날, ‘기억의 민주화’를 생각하며
마을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3년상을 치렀다. 시묘살이까지는 아니지만 장례 후에도 집에 빈소를 그대로 두고 3년 동안 상주가 자리를 지켰다. 상주는 농사일이 바쁠 때도 빈소 가까운 곳에서만 일을 보았다. 문상객은 빈소가 있는 집 골목에서부터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면서 들어가고 상주는 이 소리를 듣고 급히 빈소로 달려갔다. 먼 옛날이 아니다. 1960년대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본 장면이다.
그 후 이런 전통 상례는 변화에 변화를 거듭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1년상으로 끝내는 집이 많았다. 1980년대 집안 상을 당했을 때는 백일 만에 탈상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무렵부터 3일장을 지내고 당일 탈상하는 것이 이미 대세였다. 지금은 ‘무빈소 2일장’이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제사 풍습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 흔히 보았던 부모부터 고조부모까지 4대봉사를 모두 하는 집은 이제 찾아보기 쉽지 않다. 2대 봉사만 하거나 부모 제사만 지내도 그나마 괜찮은 경우다.
아예 기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도 주변에 허다해졌기 때문이다. 제사 구성원 간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물리적으로 지낼 사람이 없거나 여건이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무빈소 2일장’, 압축된 슬픔의 연대기
설 명절을 앞두고 관혼상제를 비롯한 우리 전통문화가 기로에 선 것을 절감한다. ‘가족 없는 가정’(1인 가구), ‘결혼식 없는 결혼’(노웨딩), ‘조문객 없는 장례’(가족장), ‘차례상 없는 명절’(조상덕 해외여행) 등과 같은 표현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런 현상이 비단 가족 단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떤 문중에 종손이 갑자기 죽었다. 자식이 딸밖에 없어 양자를 들이려고 종친들이 나섰다. 4촌 중 하나는 독자라서, 다른 하나는 종가하고 담 쌓았다면서 안 된다고 했다. 8촌은 교회 다녀서 안 되고 10촌은 어디 사는지 소재 불명이었다.
종친회라고 말하면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양자를 세울 때까지 종친회에서 봉사손(奉祀孫) 역할을 하기로 했다. 요즘 많은 문중이 이처럼 종가 계승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본다.
전통 의례나 풍속은 어떤 개인이나 그가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전승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상례나 제례 등은 그것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싶다.
예를 들어 4대봉사를 한다면 매년 기제 8회, 설과 추석 차례 2회, 시제 1회 해서 적어도 11회 제사를 지내야 한다. 4대조라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다. 지금도 4대봉사를 하는 친구의 말에서 그 이유가 보인다. “손주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은 나를 기억하고 그것을 이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귀여워해준 할아버지를 끔찍이 귀여워했을 고조부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기억하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전 세대에게 개인은 혈통의 일원으로 존재했다. 제사나 차례는 혈통 서사를 갱신하고 재확인하는 일종의 집단적 백업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사상 앞에 서는 것은 족보 속의 내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세대는 다르다. 혈연관계를 넘어 수많은 사회적 커뮤니티 속에 존재한다. 기록 방식도 블로그 SNS 클라우드 등 다양하고, 내용적으로도 혈통 서사가 아니라 자기 서사가 더 중요하다.
4대봉사를 하고 있는 친구는 차례와 제사가 사라지고 종가가 문을 닫는 것이 정체성의 해체나 전통의 붕괴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록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문 서사라는 낡은 양식을 개인 서사라는 새로운 매체로 옮겨 쓰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가 4대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강요하지 않는다.
딸이 가문의 서사를 잇는다
최근 많은 문중의 족보가 디지털화하고 한글화했다. 딸만 있는 집안에서 외손자가 제사를 모시고 족보에 딸과 외손의 이름이 오르고 있다. 외손봉사를 허용하거나 딸이 종가를 관리하는 문중도 늘고 있다. 기록 관점에서 기억의 전송로가 확장된 것이고 기억의 민주화가 진행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의 붕괴처럼 보이는 많은 부분이 사실은 본질이 아닌 형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적장자 상속과 같은 유교적 종법 질서는 조선 후기 성리학이 교조화하면서 고착된 것에 불과하다.
어렵고 까다로운 제의 형식도 끊임없이 바뀌면서 새롭게 시대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따뜻한 마음으로 설 명절을 맞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