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AI와 시민의 소외

2026-02-12 13:00:10 게재

“노동은 자유를 만든다.” 좀 불편한 표어다. 나치의 유대인수용소 아우슈비츠 정문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죽음의 가스실로 내몰렸다. 이 표어에서 노동을 독일어 원문으로 하면 자못 뉘앙스가 달라진다. “아르바이트는 자유를 만든다.” 시간제 일자리에 내몰린 한국 청춘들에게 시니컬한 희망 고문일까.

이런 노동과 자유의 관계가 묘하게 얽히고 있다. AI시대 “노동 없는 자유”이다. AI와 로봇이 생산을 담당하고, 노동은 선택이 되는 시대 말이다. 노동의 가치를 역설하며 노동으로부터 소외를 우려했던 마르크스는 “자유시간이 진정한 부(富)”라고 했다. 그러면 노동 없는 자유는 역설적으로 노동자의 천국일까. 노동 없는 시대에 노동자는 무엇을 위해 단결해야 하나.

테슬라의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현대자동차의 아틀라스가 노동의 미래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벌써부터 현대자동차 노조는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증기기관을 바라보던 18세기 노동자와 다르겠다.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며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그럼에도 AI와 로봇시대에 공포와 기대가 불안하게 교차한다. 혁명은 살가죽을 벗기기 때문이다.어제의 가치가 오늘 무가치로 변한다. 산업혁명이 그랬다. 증기기관은 인간 근육의 가치를 저하시켰다. 자동화는 숙련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이제 AI가 인간의 판단 영역까지 대신하려 한다. 그렇다면 노동이 극도로 위축된 자본주의는 앞으로 어찌될까.

AI와 로봇시대에 공포와 기대 교차

첫째, 극단적인 독점 자본주의 가능성이다. AI를 소유한 소수가 부를 독차지하고 다수는 플랫폼에 포섭된다. 이들은 불안정한 소득으로 주변화 되며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둘째, 적당히 조정된 자본주의이다. AI가 공공재로 자리잡고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부의 재분배가 이뤄진다. 셋째, 탈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이다. 이미 생산력은 충분하다. 노동시간은 대폭 줄고 자유시간이 늘어난다. 노동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된다.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의 자유”가 펼쳐지는 거다. 동시에 그가 우려한 ‘노동의 소외’는 ‘무노동의 소외’로 바뀔 것이다. 소외는 자본과 계급이 아니라 결정과 책임의 위치에 따라 빚어질 것이다.

이러한 탈 자본주의 시대에 정치구조도 변화가 필연적이다. 민주주의 전제는 “시민이 충분한 정보에 접근하고, 판단할 시간을 가지며, 자율적으로 선택한다”는 거다. 하지만 현실은 정보 과잉으로 판단이 마비되고 경제적 양극화에 내몰린 일반인은 정치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 교묘한 여론 조작은 자율적 선택을 왜곡한다. 이런 상황에 AI는 위험과 기회의 두 얼굴로 다가온다.

먼저 위험이다. AI는 개인의 성향을 예측하고 감정을 분석해 맞춤형 메시지를 낸다. 정치는 국민 전체가 아니라 개인을 맞춤형 각개격파로 설득한다. 이때 정치는 민의를 수렴하는 아고라 광장을 벗어나 플랫폼화 된다. 토론은 클릭 경쟁으로, 공론은 알고리즘 노출로, 민의는 정치인이 아니라 인플루언서가 대표한다.

최근 정치권에 만연한 구독자와 팬덤 기반의 메시지 정치가 그렇다. 정치권력이 제도가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거다. 이는 자칫 책임 정치의 실종을 야기한다. 정책 실패는 알고리즘의 오류나 미디어의 왜곡으로 떠넘겨진다. 행정의 오류와 난맥도 시스템의 결함 탓이고. 권력은 집중되고 강화되지만 책임 소재는 모호해지는 거다.

기회의 측면도 있다. AI는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는데 기여한다. 정책을 요약하고 이해관계를 분석해 예상되는 상황을 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숙의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 4~5년만의 투표가 아닌 사안에 따라 수백만명 의견을 곧바로 모아 합의점을 도출하는 거다. 그러면 아스팔트 정치로 대표되는 ‘양적 민주주의’가 ‘질적 민주주의’로 전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AI시대 민주정치는 세 갈래 길이 있다.

첫째, 감시와 조작 민주주의다. 선거는 있지만 선택은 정교하게 유도되는 체제다. 둘째, 관리형 민주주의다. 소수 정치엘리트가 설계한 AI가 ‘합리적 선택’을 제시하고 시민은 ‘승인자’의 역할에 머무는 거다.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성공 열쇠

바람직한 형태는 AI보조형 숙의 민주주의겠다. 의제설정과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AI는 보조하는 역할이다. 가장 중요한 최종 결정권은 시민 몫이다. 여기에 필요조건이 있다. 알고리즘 공개와 데이터 주권의 확립, 그리고 시민이 결정하고 책임지는 제도다. 민주주의 핵심은 ‘똑똑한 결정’이 아니라 ‘누가 결정하는가’의 문제다. AI는 분명 노동가치도 재정의할 것이다. 종전 비경제적으로 치부된 사회적 기여가 ‘자유시간’의 진정한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정책의 방향도 대의가 아니라 시민의 직접 참여로 결정될 것이다. 결국 AI시대는 시민의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참여가 성공 열쇠다. 시민이 소외되면 노동도 자유도 민주주의도 무의미하거나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