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CNN 앵커 출신 기자 체포, 트럼프의 고조되는 언론 공격
민주주의에 대한 트럼프정부의 공격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기자가 체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CNN 앵커 출신 언론인 돈 레몬이 1월 30일 새벽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전격 체포되었다. 지난 달 18일 미네소타의 한 교회에서 벌어진 이민세관단속국 (ICE) 반대 시위를 보도한 것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은 제4부 또는 제4권력이라고 불린다. 권력의 집중화를 막기 위한 입법, 사법, 행정의 엄격한 삼권분립과 함께 언론의 권력 감시자로서의 독립적인 역할을 강조한 표현이다. 의회와 법원을 무시하고 독주하고 있는 트럼프정부의 언론 길들이기 시도가 드디어 기자 체포라는 초유의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미국 시민 르네 굿이 ICE요원의 총격에 의해 살해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ICE 반대시위가 격화되던 지난 1월 18일 미네소타 세인트폴의 한 교회에서 예배 도중 ‘ICE 퇴출’ ‘르네 굿에게 정의를’ 이라는구호가 울려퍼졌다. 그 교회 소속 데이비드 이스터우드 목사가 ICE 간부 요원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교회 안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것이다.
체포 이유는 ‘신성한 예배권리 침해’
돈 레몬은 이 시위 취재를 위해 교회 안에 들어가 촬영을 하면서 자신의 채널을 통해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이를 두고 트럼프정부는 그가 예배 방해와 종교자유권 침해를 금지하는 ‘페이스법’ (FACE Act)을 위반 했다고 기소한 것이다.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최고 10년 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또다른 독립 언론인 조지아 포트도 같은 혐의로 체포되었다.
1월 18일 시위로 인해 지금까지 두 명의 기자와 일곱 명의 시위 참가자들이 체포되었다. 범죄 혐의는 이들이 교회의 중앙 통로와 앞쪽 좌석들을 점거하고 “위협적이고 협박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신도들과 목회자들을 억압하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팸 본디 연방 법무부 장관은 소셜미디어에 레몬과 포트의 체포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이 직접 지시해 이들의 체포가 이루어졌다 밝혔다. 그러면서 종교 시설에 대한 공격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레몬의 체포를 사전에 몰랐다고 주장하면서도 레몬이 ‘역겨운 인간’이고 ‘한물간 사람’이라고 그 특유의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그리면서 아무도 레몬의 뉴스를 보지 않기에 ‘아마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일이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레몬은 기자들에게 결코 정권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지난 30년 동안 해 온 언론인으로서의 일을 계속해 나가고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지금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을 밝히고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이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중요한 때는 없습니다.”
‘언론과의 전쟁’ 수위 더 높이는 트럼프
오랜 기간 동안 언어적 비난, 법적 소송, 재정적 압박 등을 통해 언론을 탄압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더 공격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후보 시절부터 그는 자신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에 대해 ‘가짜 뉴스’ ‘미국인의 적’이라고 매도해 왔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언론에 대한 그의 노골적인 적대심 표현에는 한치의 변함이 없다.
예를 들면, 취임식 참여 인파가 이전보다 적었다는 보도에 대해 2017년 취임 첫 날부터 기자들을 향해 “지구에서 가장 부정직한 인간들”이라고 비난한 것부터 시작해 며칠 전 백악관에서 앱스틴 파일 관련 질문을 하는 CNN 앵커이자 기자인 케이틀린 콜린스에게 “최악의 리포터” “CNN의 시청률이 낮은 건 당신 같은 사람 때문” “한 번도 웃는 걸 본 적이 없다”, “웃지 않는 건 당신이 부정직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는 등 기자의 질문을 회피하면서 인신공격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런 트럼프의 ‘언론과의 전쟁’은 ‘가짜 뉴스’라고 조롱을 하거나 특정 언론인에 대해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백악관 출입 금지, 방송사 면허 취소 압박, 공익언론사에 대한 연방정부 예산 삭감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왔다. 또한 자신에 대한 거짓말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언론사를 상대로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 트럼프의 언론사에 대한 소송 제기는 독립적인 저널리즘을 협박해 굴복시키려는 전형적인 반(反)언론 수법이자 정권에 대한 반대를 틀어막으려는 시도이다. 지금까지 월스트리트저널에게 100억달러 (약 14조원), 뉴욕타임스를 상대로150억 달러(약 21조원), 영국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BBC에게 50억달러(약 7조원) 손해배상 청구 등 소송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방송사 ABC 와 CBS 는 이미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소송 취하에 합의했다. CBS의 심야 토크쇼 ‘더 레이트 쇼’의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가 이 합의금 지급을 ‘엄청난 뇌물’이라고 비판한 후 CBS는 콜베어 쇼의 폐지를 발표했다. ‘재정적 이유’ 때문이라고 했지만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의 갑작스런 종영 결정이 콜베어의 트럼프에 대한 풍자와 비판과 무관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콜베어의 해고 소식이 ‘정말 기쁘다’고 썼다.
이렇듯 언론을 향한 공격은 1기와 2기 트럼프정부를 거치면서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까지 계속 악화되어 왔다. 1월 중순에는 FBI 요원들이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을 압수한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당국은 기자나 신문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군사 기밀 불법 소지 혐의를 받는 정부 계약업체 직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압수수색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소환장 발부를 통해 증거를 확보하는 통상적인 절차가 아닌 이른 새벽에 기자의 자택을 덮쳐 취재 장비를 압수하는 폭력적인 방식은 언론계의 큰 반발을 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번 기자 체포가 더 큰 우려를 자아내는 이유는 기자에 대한 형사기소는 지금까지 벌어진 언론에 대한 공격들과 다른 차원의 공격이라는 점이다. 레몬과 포트가 활동가가 아니라 기자로서 시위 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정부는 이들의 취재를 범죄 행위로 규정해 처벌하려고 한다. 이는 진실을 밝히고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인을 보호하는 수정헌법 제1조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다. 국제언론인협회(IPI)의 사무총장 스콧 그리펜은 성명을 통해 업무를 수행하던 독립 언론인 두 명이 체포된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면서 트럼프정부의 언론 자유에 대한 탄압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는 수정헌법 제1조와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라면서 언론 활동을 범죄화하려는 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연방법원 영장 기각에도 체포 강행
실제로 연방법원은 범죄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 신청을 두번이나 기각했다. 이에 본디 법무장관이 크게 화를 냈고, 결국 연방 대배심에 사건을 회부해 기소 결정을 받아낸 뒤 체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혼란스러운 시위 현장에서 기자가 시위대와 함께 체포되었다가 풀려나는 일은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법원의 영장 기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기어코 형사 기소를 추진한 이번 사태는 시위 취재 현장에서 경찰에게 체포된 사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건 발생 후 몇주 동안 법원의 반대를 무시하고 정부의 최상부 주도 하에 계속 수사를 밀어붙인 정치적 의도가 분명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 시민을 둘이나 총격 살해한 연방 요원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지지부진 하면서 기자들의 항의시위 보도를 기소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쏟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정부가 직면한 수많은 위기에서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