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이젠 3월
영국 시인 엘리엇은 ‘황무지’의 첫 구절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선언한다. 4월을 봄이 시작되는 달로 이해한 그는 봄을 희망과 생명의 계절로 여기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죽어 있던 것들을 다시 깨우고 과거의 기억과 욕망을 되살리는 시기로 여겼기 때문이다. 즉, 엘리엇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오히려 인간에게 고통스러운 기억과 공허함을 환기시키는 역설적인 계절이라고 표현했다.
학창 시절의 필자는 엉뚱한 이유로 4월이 잔인한 달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4.19 학생혁명 기념일에 즈음한 4월 중하순은 벚꽃이 만개한 시기였다. 그런데 중간고사로 인해 꽃구경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었고, 시험이 끝난 후 돌아보면 꽃이 모두 져 버린 상황이었다. 청춘의 계절을 공부하느라 챙기지 못하고 시험이 끝난 후 비에 젖어 땅에 떨어진 꽃잎을 확인하는 4월이 잔인하다며 엘리엇의 표현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엘리엇이 현대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4월이 아니라 3월을 잔인한 달이라 표현해야 할 듯하다. 4월 초에 맞춰지던 벚꽃의 개화 시기는 이제 3월 중순으로 앞당겨졌고, 남부 지역에서는 2월 말에도 꽃망울이 터진다. 개나리와 진달래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것도 예전처럼 순차적으로 피는 게 아니고 모든 봄꽃들이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우리나라의 봄꽃들은 해마다 조금씩 더 일찍 찾아오고 있는데 꽃이 피는 시기는 달력의 약속이 아닌 현실이다.
우리나라 기온 10년마다 0.21℃씩 상승
개화 시기 변화는 단순한 자연의 변덕이 아니라 기후변화의 분명한 신호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평균기온은 지난 113년간(1912~2024년) 10년마다 평균 0.21℃씩 상승했다. 최근 자료를 보면 더 뚜렷한데 1991~2020년 평년값이 1981~2010년보다 0.3℃ 높아졌다. 봄꽃 개화일도 이전보다 1~5일 빨라져 봄이 앞당겨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기후적 봄의 시작은 3월 7일에서 3월 1일로 빨라졌고, 겨울 길이는 109일에서 87일로 짧아졌다.
식물의 개화는 온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기온상승은 개화 시기의 변화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변화가 단지 꽃이 일찍 피는 낭만적인 풍경, 4월이 아니라 3월이 잔인한 달이라는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꽃이 피는 시기와 곤충의 활동 시기가 어긋나면 수분 과정에 문제가 생긴다. 이는 곧 농작물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철새의 이동 시기와 먹이 공급 시기가 맞지 않게 되면서 생태계의 연쇄적인 불균형이 발생한다.
우리가 체감하는 ‘조금 빨라진 봄’은 사실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생태계 전반의 균형이 깨지면서 세상이 변모하고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생존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된다.
최근 기후변화의 원인은 인간활동에서 비롯된 온실가스 배출이다. 산업화 이후 급격히 증가한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구의 평균기온을 끌어올렸고 그 결과 계절의 리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제 기후변화는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우리가 매년 마주하는 꽃의 개화 시기에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개화 시기의 변화는 질문을 던진다. “이대로 괜찮은가? 봄이 점점 빨라지는 세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행동으로 응답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꽃은 해마다 피겠지만, 그 시기가 계속 앞당겨진다면 우리가 알던 계절의 의미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후변화를 인정하길 거부하는 미국 대통령을 탓하고, 지구적 차원의 해결책을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속 작은 실천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한 대중교통 이용하기, 에너지 절약하기와 같은 행동은 우리나라가 선진국민임을 보여주는 멋진 모습이다.
트럼프발 전쟁이 만든 에너지전환 아이러니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던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으로 인해 전세계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며 대안을 찾는 기후위기 대응의 아이러니가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무튼 선진 시민의식을 지닌 개인의 작은 선택과 참여가 사회 전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되고 있는데, 이는 또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또 다른 초석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 현장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오늘, 4월 중순에 이미 떨어져버린 벚나무 꽃잎 속에 와 있다. 이제는 그 변화를 인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되돌리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적극적인 에너지 절약과 탈 화석연료가 그 초석이다.
서울대 객원교수
농림생물자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