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재벌의 허위자료 제출 근절해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6일 정몽규 HDC 회장을 1억5000만원 벌금형에 처해달라며 법원에 약식기소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 지정 관련 자료를 공정거래위원회에 허위로 제출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혐의이다.
정 회장은 2021~2024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등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가족 소유 계열사들을 누락한 혐의다. 공정위가 지난 3월 고발하자 검찰이 이달 8일 공소시효 만료를 눈 앞에 두고 서둘러 기소한 것이다.
허위자료 제출은 불투명한 경영행각의 대표적 사례
공정위 조사 결과 정 회장의 허위자료 제출은 그가 HDC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된 2006년부터 2024년까지 무려 19년 동안 이어졌다. 그렇지만 기소는 5년 공소시효를 적용할 수 있는 2021년 이후 누락분에만 적용됐다. 누락된 회사들은 주로 정 회장의 친족 기업이다. SJG홀딩스 등 12개사는 정 회장의 외삼촌인 박세종 SJG세종 명예회장 일가가 지배한다. 인트란스해운 등 8개사는 여동생 정유경씨와 남편 김종엽 대표 일가가 경영한다.
혐의 내용에 비해 법적 처분은 가벼워 보인다. 다만 현행법상 최고형을 적용했으니, 나름 고심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앞서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이 지난 3일 같은 혐의로 벌금 1억50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DB그룹 역시 공정거래위원회에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서 동곡사회복지재단 및 산하 회사 15개를 소속 법인에서 빠뜨린 혐의를 받는다.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지 2년 5개월 만인 지난 2월에서야 김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재벌들의 허위자료 제출은 정부와 국민에 대한 눈속임이다. 오래도록 이어져온 악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법위반에 대한 최고제재가 징역 2년이나 벌금 1억5000만원으로 묶여 있어 미약한 데다 그나마 정부의 법집행 의지도 박약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윤석열정부에서는 이 문제로 고발된 곳은 금호석유화학의 박찬구 회장 1인뿐이었다. 감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공정거래위원회 정기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3년간 발생한 지정자료 허위제출 위반 행위 총 31건 중 29건이 경고 처분에 그쳤다. 최태원 SK회장의 경우도 적발됐지만 ‘경고’로 끝냈다.
재벌기업 혹은 총수 관련회사가 대규모기업집단 계열사라는 지정을 피하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빠져 사익편취 규제 또는 공시의무 등을 피해나갈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에 주어지는 세제 금융상의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재벌들이 지금까지 널리 애용해 왔다. 불투명 경영행각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경제력집중을 염려하여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지만, 그런 악습은 여전하다.
그런데 이재명정부가 지난해 5월 출범한 이후 다소 달라졌다. 지난해 8월 농심 신동원 회장이 그룹 소속 회사를 누락시킨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고발됐다. 또 지난 2월에는 영원그룹 성기학 회장이 고발돼 지난달 1억원의 벌금형에 약식기소됐다. 출범 1년도 안됐는데 벌써 4개의 재벌이 제재 대상에 오른 것이다. 다만 제재 강도가 미약하기 때문에 실효를 거둘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법개정을 통해서라도 제재강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법적보완은 나중에 하더라도 우선은 주어진 조건 아래서라도 법집행을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위자료 제출 등에 관한 법조문이나 제재 자체가 아예 필요없을 정도로 근절해야 한다.
코리아프리미엄 위해 악습 없애는 것 시급
한국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코리아프리미엄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런 악습을 없애는 것이 시급하다. 재벌들도 이제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와 같은 불투명 행각을 계속할 경우 정부 제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공격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