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에 중남미가 침묵하는 이유

2026-04-15 13:00:42 게재

강대국 간 갈등 개입하지 않는'비동맹 전통' … 아랍계와 유대계 공존 위한 균형 찾기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국제사회는 빠르게 입장을 내놓는다. 유럽은 안보를 이유로 중동은 생존을 이유로 분명한 입장을 내놓는 가운데, 중남미는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중남미 어느 나라도 이 분쟁에 대해 격렬하게 규탄하거나 중요한 외교적 역할을 자처하지 않는다. 물론 많은 국가들이 민간인 피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으나 그 언어는 대체로 원칙적이고 절제되어 있다.

또한 미주기구(OAS)나 중남미국가공동체(CELAC)와 같은 주요 지역기구들도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침묵’이라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도덕적 판단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경제와 외교 그리고 사회 내부의 균형을 고려한 계산된 전략이라고 봐야 한다.

3월 14일 아랍에미리트 푸자이라의 한 석유 시설에서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침묵과 절제된 발언으로 불확실성 관리

중남미는 역사적으로 강대국 간 갈등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비동맹의 전통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이는 단순히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강대국 사이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생존전략이었다. 오랜 기간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이 지역은 외부 강대국의 갈등에 깊이 관여할수록 큰 비용을 치러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 중남미 국가들은 특정 편에 서기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를 항상 고려해 가능한 한 자율성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외교적 발언의 수위를 조절해왔다.

특히 무역 투자 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중남미 경제 구조에서, 미국의 핵심 외교·안보 이해가 걸린 이란 문제에 대한 노골적인 반미 또는 반이스라엘 입장을 취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긴장시키는 요인이 되고 이는 곧 경제와 외교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침묵 또는 절제된 발언은 불확실성을 관리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다.

동시에 중남미는 강대국에 대한 완전한 동조 역시 피하려 한다. 과도한 의존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남미의 외교는 항상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하나는 미국과의 안정적 관계 유지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적 자율성의 확보다. 이는 미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그렇다고 무조건 따를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형성된 균형의 기술이다.

중동전쟁을 둘러싼 중남미의 소극적 태도는 이러한 외교적 전통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선택은 불필요한 발언을 줄이고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다. 오늘날 중남미 각국이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외부 전쟁이 아니라 내부의 경제와 사회다.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심화하는 빈부격차, 반복적인 정치 불안이 대부분의 국가와 시민을 압박하는 가장 절박한 현실이다.

중동전쟁이 국제 유가를 올리고, 이는 곧 중남미의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 지역에서 외교는 이상보다 현실에 가깝다. 전쟁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 그 전쟁이 자국 경제와 사회에 미칠 영향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는 회피가 아니라 제한된 자원과 복잡한 조건 속에서 선택된 실용주의다. 전쟁에 대한 강경한 입장 표명이 오히려 불필요한 외교적 부담만 키울 뿐 국내 정치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외교적 메시지보다 물가 안정이 더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되는 현실에서, 강한 입장 표명은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원자재 수출과 외부시장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 역시 이러한 태도를 강화한다. 중남미는 국제 금융 환경과 투자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에, 외교적 긴장은 곧 경제적 불안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특정 진영에 대한 공개적 비판이나 지지는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투자 위축과 통화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대외신뢰가 중요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외교적 리스크를 감수할 유인은 크지 않다. 결국 침묵은 경제를 방어하기 위한 선택이 된다.

아랍계와 유대계가 동시에 공존하는 지역

중남미 안에는 중동전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중남미는 세계에서도 드물게 아랍계와 유대인 공동체가 동시에 공존하는 지역이다. 레바논·시리아·팔레스타인 출신 후손으로 구성된 아랍계 인구는 중남미 전역에 걸쳐 수천만 명에 이르고, 특히 칠레는 팔레스타인계 공동체가 사회·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동시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대인 공동체 역시 오랜 역사와 강한 조직력을 갖춘 영향력 있는 사회집단이다. 이 두 공동체는 각각의 역사적 기억과 정체성을 유지한 채 중남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 치하의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어려움을 피해 중남미로 건너온 아랍계 이민자들은 유통 건설 금융 등에서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고, 이후 정치와 공직에 진출하면서 사회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장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 권력층까지 진입하며 핵심 집단으로 성장했다.

동시에 유대인 공동체는 19세기 말,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반유대주의와 박해를 피해 이주했고 이후 20세기 중반에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추가적인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더욱 확대됐다. 이들은 농촌에서 점차 대도시로 이동하며 상업과 금융, 전문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중산층 이상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했다.

이러한 경제적 기반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사회적 영향력으로 이어졌고,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와 공공 영역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중남미 유대인의 규모는 아랍계보다 작지만 박해와 생존 경험에 기반한 집단적 정체성을 가진 매우 조직력 있고 결속력이 강한 집단이다.

이 두 공동체는 각자의 역사와 기억을 유지한 채 중남미 사회의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이 기억들이 중동갈등에 대한 두 개의 시선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아랍계 특히 팔레스타인계는 중동문제를 식민과 억압,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은 인권과 연대의 언어로 해석되며, 민간인 피해에 대한 공감이 강조된다. 반면 유대인 공동체는 같은 상황을 안보와 생존의 문제로 바라본다.

역사적 박해와 생존의 기억은 중동의 긴장을 보다 직접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고, 그 결과 전쟁에 대한 반응은 방어와 자위권의 논리로 표현된다. 하나의 사건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는 감정적 충돌과 사회적 긴장감을 초래한다. 중동의 상황이 악화할수록 중남미의 거리와 언론, 정치권에서도 이 두 시선은 충돌한다.

같은 도시 안에서 서로 다른 집회와 성명이 등장하고 동일한 사건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외교적 발언은 국제적 메시지가 아니라 국내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가 된다. 특정 입장을 강하게 취하는 순간 이는 곧 내부 균형을 흔드는 정치적 선택이 된다.

사회적 갈등 예방하려는 안전장치

따라서 중남미의 국가들은 중동분쟁에 대해서 “평화”와 “대화”라는 원칙적 발언에 그치며 직접적인 책임 규정은 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외교적 모호성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공동체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려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외부에서 볼 때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 국제사회는 보다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고 명확한 도덕적 판단을 기대한다. 그러나 중남미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중남미는 중동전쟁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이 자국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결국 중남미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 두 개의 시선을 가진 공동체가 공존하기 위한 균형을 찾고 있다.

손혜현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