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정열에너지법 제정을 환영하며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국내 통계에 따르면 열에너지는 전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의 약 50%를 차지한다. 특히, 건물 부문을 중심으로 한 열 사용은 에너지 관련 온실가스 배출의 약 30%를 유발한다. 그럼에도 현대 에너지 정책 논의에서 열에너지는 늘 뒷전이었다. 전력이 주목받는 동안, 정작 우리 삶과 산업을 지탱해 온 열에너지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취급 받아왔다.
최근 국회에서는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발표를 계기로, 여야가 힘을 모아 ‘청정열에너지법(안)’ 제정 논의를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열에너지의 독자적인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체계적인 육성에 나선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필자는 이번 입법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열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철저한 ‘지방 분권’과‘지산지소(地産地消)’다. 최근 전력 분야조차 송전망 건설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장거리 송전의 비효율 탓에 ‘분산에너지법’을 도입하며 지역 생산·소비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하물며 배관 손실로 장거리 수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열에너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역별로 활용 가능한 열원 역시 폐열, 지열, 수열 등 여건에 따라 크게 다르다. 따라서 중앙의 획일적 계획보다는 독일의 ‘열계획법’ 사례처럼 지자체에 실질적인 권한과 재량을 부여하여 지역 특성에 맞는 최적의 열활용 해법을 찾도록 해야 한다.
열에너지 정책의 핵심은 ‘지방 분권’
둘째, 중앙정부는 ‘확실한 가이드’와 ‘과감한 재정 지원’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돼야 한다.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숙제만 던져주어서는 안 된다. 지자체 간 재정 격차를 완화하고 계획의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해, ‘기후대응기금’ 등을 활용한 과감한 정책 자금 지원을 법제화해야 한다. 또한, 전국 단위의 열지도 구축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보다 효율적인 인프라 구축을 유도해야 한다.
셋째, 탈탄소 기술 적용에 있어 현장에 맞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히트펌프가 열에너지 탈탄소의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도심의 전력 부하를 고려할 때 공기열 히트펌프의 무조건적인 확산은 전력망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효율이 높고 안정적인 수열·지열 히트펌프를 우선 도입하고, 공기열은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동시에, 기존 열공급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열병합발전(CHP)에 대한 전환 전략도 병행되어야 한다. CHP의 LNG연료사용을 청정열원 전환을 위한 수소 혼소, 수소 전소 터빈 도입 등 정부차원의 로드맵과 설비전환 지원책도 필요하다. 이는 기존 인프라를 활용하면서도 청정열원으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다. 아울러 청정열의 인증 범위 또한 유연성이 필요하다. 유럽의 사례와 같이 초기에는 산업체 폐열, 발전소 냉각수열, 하수열 등 미활용 열원까지 폭넓게 인정하여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향후 기술 성숙도에 따라 기준을 강화하는 ‘실효적 전환’ 전략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불합리한 규제를 풀고 시장이 반응할 수 있는‘인센티브’제도가 필요하다. 집단에너지사업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도입된 사업임에도, 전기설비(100MW)기준으로 LNG 도매 구입을 제한하는 현재 규제는 에너지 전환 흐름과 맞지 않는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불필요하게 비싼 소매가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배출권 할당 시 미활용 열 활용 비중에 따라 사업자별 BM계수와 무상할당을 차등 적용해 열생산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합리적으로 평가·보상 받도록 해야 한다. 규제를 개선하고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때, 시장은 보다 과감한 투자가 이뤄질 것이다.
지금이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 ‘골든타임’
지금이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의 ‘골든타임’이다. 이번 입법이 청정열에너지 확대와 온실가스 감축을 가속화하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 이제는 법과 제도로 그 답을 실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