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헌금 ‘휴먼에러’ 아닌 ‘구조적 병폐’

2026-02-11 13:00:28 게재

투명성 높이고 비리 처벌 강화

시민사회 ‘후보검증 연대’ 제안

역대 최저 투표율(50.9%), 무투표 당선 급증(490명), 거대 양당 의석독점 심화(93.6%). 4년 전 제8회 지방선거 성적표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김 경 서울시의원 공천헌금 사건은 지방선거 제도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에 시민사회단체와 소수정당들이 연일 토론회 집회 등을 통해 지방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내일신문은 현재 제기되는 개혁 과제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방선거 때 공천 장사를 해서 자기 정치 비용과 총선 비용을 마련하는 국회의원들이 여야에 부지기수로 있다. 그게 어찌 지금 수사당하는 김병기, 강선우만의 일이겠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얼마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그의 말대로 최근 불거진 공천헌금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정 정당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시스템 에러가 아니라 휴먼 에러’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구조적 병폐가 드러난 것이라며 공천제도와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선 과거 ‘총선연대 낙선운동’처럼 주민이 참여하는 ‘후보검증연대’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10일 열린 경실련 ‘2026 지방선거 무엇을 바꿀 것인가?’ 연속 공개 간담회. 사진 경실련 제공

◆‘당원 공천’ ‘시스템 공천’ ‘온라인 공천’ = 공천헌금 의혹이 불거지자 정당마다 공천비리 근절대책을 내놨다. 민주당은 최근 시·도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공관위) 구성에 현역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을 배제하고 공천 관련 회의기록을 4년간 의무 보존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앞서 공천 ‘룰’도 손봤다. 광역의원 비례대표(권리당원투표 100%)와 기초의원 비례대표(상무위원 50%, 권리당원 50%) 후보선출방식을 바꾼 게 핵심이다. 이와 함께 후보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예비경선제, 공천신문고 제도 등을 도입했다.

국민의힘은 시·도지사, 기초단체장 등 선출직 공직자를 매년 평가해 공천에 반영하고 공천비리 신고센터도 운영하기로 했다.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외부인사 2/3 이상)’를 신설해 평가하고 그 결과를 향후 후보자 자격심사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장동혁 대표는 “관성에서 벗어나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는 시스템 공천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최근 50만명 이상 대도시의 기초단체장 공천권을 중앙당이 행사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개혁신당은 ‘비효율’ ‘로비’ ‘기탁금’ 없는 ‘3무 공천’ 방안을 내놨다. 천하람 공관위원장은 “온라인 공천심사 시스템을 통해 절차를 단순화하고 기탁금을 없애 기초의원 선거를 300만원 수준의 최소 비용으로 치를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며 “기존 정치권의 관행과 달리 로비가 개입할 공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공천비리 발생 시 정당 보조금 삭감” = 하지만 전문가들은 ‘돈 공천’을 불식시키기엔 미흡하다고 평가한다. 최근 경실련이 ‘지방선거 무엇을 바꿀 것인가’란 주제로 개최한 연속 간담회에서 하상응(서강대 교수) 경실련 정치개혁위원회 위원장은 “공천헌금 문제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방선거 후보공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국회의원의 입김을 약화시키기 위한 제도인 ‘국민참여경선’이나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천헌금 문제는 공천의 불투명성과 과소경쟁 때문”이라며 “공천의 투명화·분권화·경쟁화로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공천심사 기준 법제화(공직선거법에 공천심사 최소기준 신설) △공천심사 회의록 공개 △상향식 공천 원칙화 △공천 정당 책임제(공천비리발생 시 국고보조금 삭감) 등을 제시했다. 공천헌금 근절을 위해 공천관련 금품수수 법적 제재, 내부 고발자 보호 강화, 공천비용 상한제 및 공개 등을 제안했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주장해온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보다 정당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성은 건국대 공공정책학과 교수는 “정당 공천이 유지되는 선거구조라면 정당이 후보자 교육과 검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지방의원·예비후보자 교육 이수를 요건으로 하는 목적형 국고보조금 도입 등 인센티브·조건부 제재 방안을 제안했다.

◆유권자의 힘 보여준 ‘총선연대 낙선운동’ = 시민사회쪽은 정당의 후보검증·공천심사 과정에 외부인사 참여 및 감시를 제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민호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대표는 “공천 결과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등 외부 인사들이 참여해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며 “과거 민주당이 도입했던 시민배심원제를 현 상황에 맞게 보완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6.3지방선거 후보자검증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지방자치 30년 평가와 과제’ 토론회에서 김승원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는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선택이 거대양당에 의해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현실적 대안으로 주민이 참여하는 검증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며 “과거 국민운동본부, 공명선거감시단 경험 등을 현 상황에 맞게 운용한다면 주민참여에 의한 거대양당체제의 일방성, 투표율 저하 등의 문제를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민호 공동대표도 “과거 ‘총선연대 낙선운동’은 사법부가 불법으로 판단했지만 유권자의 힘으로 정당이 공천한 후보를 낙선시켰던 유일한 사례”라며 “시민사회가 유능한 지방정부 검증 등 연대활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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