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융합의 문화’와 한국의 미래 결정

2026-02-11 13:00:21 게재

지난 팬데믹 당시, 미국의 바이오 기업 모더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속도로 백신을 개발해 공급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본래 mRNA 기반 백신은 체내에서 불안정하고 쉽게 분해되어 치료제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모더나는 이를 빠르게 극복했다. 지질나노기술을 접목해 세포 내 생존율을 높이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반의 신속한 설계로 후보물질을 도출해 낸 것이다. 이는 융합 연구가 거둔 혁신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피지컬 AI와 뉴로모픽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 산업의 지형을 바꿀 이들 분야는 기계와 IT, IT와 바이오가 서로 보완하며 융합하고 있다. 더욱이 AI와 로봇 등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기술이 부상함에 따라, 이제 기술 개발 단계에서부터 인문사회적 가치를 고려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모더나, 융합 연구가 거둔 혁신적인 성과의 대표적 사례

세계 기술 패권의 흐름이 ‘연결과 융합’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의 ‘AI 3대 강국 진입’ 목표에 발맞춰, 과학기술과 산업 전 분야에 AI를 접목해야 하는 지금, 융합은 시대적 소명이자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과학기술의 융합은 단순히 이질적인 기술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이 섞이는 ‘문화’를 일구는 일이다. 따라서 성급한 성과주의보다는 긴 호흡으로 결실을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연구자 간의 신뢰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진정한 융합이 시작될 수 있다. 따라서 자율적인 소통을 억제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정보의 자유로운 교류 또한 중요하다. 현재 각 연구소는 정보를 개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해 관리하고 있으나, 타 기관 연구원의 접근은 매우 제한적이다. 필요한 기술과 데이터를 찾는 데 과도한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는 구조는 융합 연구를 어렵게 만든다.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데이터를 자유롭게 공유·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인력과 예산 운영의 경직성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새로운 융합 과제를 기획하고 착수하는 데만 수년이 걸리는 현 구조에서는 실시간으로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에 대응하기 어렵다. 연구기관 간 인력 이동이 원활하지 않고 예산의 공동 활용조차 쉽지 않다 보니, 결국 각자 연구한 뒤 결과만 기계적으로 합치는 ‘형식적 연구’에 그치기 쉽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 과정에서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탄력적인 운영 체계가 도입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처 간 협력 모델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그간 우리나라의 R&D 체계는 기술 성숙도에 따라 기초-응용-개발로 이어지는 선형적 틀을 유지해 왔다. 각 부처의 역할을 고려할 때 이는 타당한 측면이 있으나, 최근 ‘기초’와 ‘개발’의 경계가 무의미한 기술 분야가 급증하며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경직된 구조 내에서는 기초 연구 성과가 실질적인 응용·개발로 연계되기 어렵고, 특히 여러 기술이 얽힌 융합 연구는 예산 확보 단계부터 난항을 겪기 일쑤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무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축하고, 실질적인 협업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연구 가로막는 장애물 걷어내야 우리의 미래 꿈꿀 수 있어

과거 연구 현장에는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하는 ‘포장된 항로’와 같은 경직된 행정 매뉴얼이 있었다.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는 효과적이었으나,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기술을 융합하는 현재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 연구를 가로막는 이러한 전시대적 장애물들을 걷어내야만 비로소 우리의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이석래 한국연구재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