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평

라이칭더 탄핵, 성공 여부보다 중요한 것

2026-02-13 13:00:01 게재

2025년 12월 대만 국회(입법원)가 라이칭더 총통 탄핵 절차에 들어갔다. 총통 탄핵이 더 이상 ‘만약’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이다. 대만에서 현직 총통을 상대로 탄핵 절차가 본격화된 것은 이례적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권이 탄핵 카드를 꺼내 들면서 총통부와 국회 간 전면 충돌이 시작됐다. 이번 탄핵안은 일회성 공세가 아니다.

2026년 1월 공청회와 심사회로 쟁점을 띄운 뒤 5월 추가 심사와 본회의 표결까지, 단계별 시간표가 촘촘히 짜여 있다. 탄핵이 되든 안 되든 총통을 국회 심판대에 계속 세워두겠다는 계산이 깔린 일정이다. 공청회 개최, 전원위원회 심사, 총통 출석 요구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탄핵은 정치 전면에 떠올랐다. 여야 충돌도 단순한 당파 싸움을 넘어 ‘헌법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국민당과 민중당이 내건 탄핵 명분은 단순하다. 국회가 통과시킨 ‘재정수지분배법(財政收支劃分法)’을 총통이 일부러 공포하지 않고 묵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은 중앙과 지방 간 재정 배분을 새로 정한 것으로 야권의 핵심 입법 성과다.

대만 헌법에 따르면 국회를 통과한 법률은 행정원장이 서명한 뒤 총통이 공포해야 한다. 야권은 이를 안 하는 것은 입법권 침해이자 헌법 위반이라고 몰아붙인다. ‘권력 분립을 무너뜨린 행위’이자 ‘헌정 질서 파괴’라는 것이다. 야권은 탄핵을 정쟁이 아니라 헌법 수호라고 포장한다.

야권의 계산법, 해임 아닌 압박

반면 집권 민진당은 야권이 탄핵을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악용해 국회 우위를 굳히려 한다고 반박한다. 권력 분립을 깨는 쪽은 오히려 야권이라는 논리다. 민진당은 야권이 국회 다수를 앞세워 행정부를 옥죄는 ‘입법 폭주’를 벌이고 있다고 맞선다.

그러나 국민당과 민중당의 속내는 다른 데 있다. 총통을 진짜 끌어내리겠다기보다 전략적 셈법이 앞선다. 첫째, 법률 공포와 국정 전반에 압박을 가해 국정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다. 둘째, 국민당과 민중당의 의회 공조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는 성격이 강하다. 두 당은 이념과 지지 기반이 다르지만 반(反)민진당이라는 공통분모로 손을 잡았다. 탄핵 심사 내내 두 당이 똑같은 논리와 표현을 반복하며 ‘공동 전선’을 과시하는 모습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만에서 총통을 탄핵하려면 국회 2/3 이상 찬성과 헌법법정 판단이라는 이중 관문을 넘어야 한다. 문턱이 높아서 현지에서는 탄핵 성공 가능성을 낮게 본다. 야권이 국회 과반을 쥐고 있지만 2/3에는 못 미친다. 그래도 이번 탄핵 정국이 남길 파장은 만만치 않다. 탄핵은 결과와 상관없이 여론전 무기가 된다.

야권은 총통의 정당성에 계속 의문을 던질 수 있고 여권은 ‘입법 폭주’ ‘권력 분립 파괴’를 외치며 지지층을 결집한다. 공청회와 출석 공방은 정책 대결이 아니라 ‘누가 헌법을 지키는가’를 놓고 벌이는 서사 싸움이 됐다. 주목할 점이 있다. 대만 탄핵 절차에서는 총통이 국회에 나와 질의응답을 받게 돼 있다. 대통령이 탄핵 심판 과정에서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한국과 확연히 다르다.

한국에서는 탄핵 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대통령은 대리인을 통해 방어한다. 대만에서는 국회가 직접 총통을 불러 따진다. 이 절차 덕분에 탄핵은 단순히 ‘해임 여부’를 따지는 재판이 아니라 입법부가 행정수반의 책임을 공개 검증하는 무대가 된다. 최종 결론이 나기 전부터 정치적 긴장과 압박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번 탄핵 정국의 핵심은 ‘라이칭더 총통이 정말 쫓겨나느냐’가 아니다. 국회와 총통이 부딪칠 때 대만 정치가 이를 헌법 안에서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진짜 문제다. 탄핵이 되든 안 되든 그보다 중요한 것은 헌법이 준 칼을 누가, 어떻게 휘두르느냐다. 이번 사태는 대만에서 국회 다수파가 쥔 견제 카드가 실제로 얼마나 먹히는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시험대에 오른 다수파의 견제 카드

탄핵은 국회가 가진 정당한 무기다. 대통령제에서 행정부를 잡아두는 핵심 고삐이기도 하다. 이 제도가 힘을 발휘하려면 명분, 해석, 국민 공감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지금 대만 상황은 이 세 가지가 책임 추궁과 여론전 속에서 어떻게 뒤섞이는지를 보여준다.

이번 탄핵 정국은 탄핵권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그 권한이 정치 안정과 책임 정치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가늠해보는 기회다.

하범식 대만 국립가오슝대 교수 동아시아어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