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요구’보다 약한 ‘내란가담’ 처벌
‘언론사 단전·단수’ 이상민 징역7년 선고
‘뇌물 요구’ 전 인천항만공사 임원은 8년
‘국민 눈높이’ 안 맞는 판결에 불신 자초
여당이 사법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는 가운데, 법원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스스로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2부(류경진 부장판사)는 전날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이 전 장관이 이에 순차적으로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계엄 당일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등 주요 기관 봉쇄와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받고, 허석곤 당시 소방청장에게 협조를 지시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특히 이 전 장관이 “고위공직자로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비상계엄의 의미와 요건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고, 소방청장에게 단전·단수 협조를 지시하기 직전 경찰청장과의 통화를 통해 국회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던 점” 등을 근거로 내란 중요임무종사의 고의와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허 전 청장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는 무죄로 봤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서 ‘단전·단수를 지시하지 않았고,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은 적도 없다’는 취지로 위증한 혐의는 유죄로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을 비롯한 윤석열, 김용현 등의 내란 행위는 헌법이 상정한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적 수단을 통해 국회를 포함한 국가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해 그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것으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것”이라고 질타하고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 내란 행위에 대해서는 그 목적 달성 여부와 무관하게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 전 장관이 사전에 내란을 모의하거나 예비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고, 반복적으로 단전·단수를 지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내란 중요임무를 수행했다고 볼 자료도 부족하다는 점 등을 들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조은석 내란 특검팀이 구형한 징역 15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같은 혐의로 1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23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 전 장관이 한 전 총리에 비해 직위는 낮지만, 내란 행위에는 더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평가가 있었던 만큼 중형이 선고될 것이라는 당초 전망은 빗나갔다.
이 전 장관의 형량은 같은 날 인천지방법원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전 인천항만공사 부사장 A씨에게 선고한 징역 8년보다도 낮다. A씨는 2023년 2~3월 인천 북항 배후부지 체육시설 조성 사업과 관련해 민간업체에 4억여원의 뇌물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실제 금품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중형이 선고됐다.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한 내란 행위’에 가담한 이 전 장관이 개인 비리인 뇌물 요구 사건보다 더 가벼운 처벌을 받은 셈이다. 법원 판결이 국민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체포 방해, 국무위원 심의권 침해,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 사후 계엄선포문 작성·폐기 혐의 등 사건에서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징역 5년을 선고해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우인성 부장판사)는 김건희 여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사건에서 대부분 무죄를 선고해 논란을 낳았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을 인지했고, 김 여사의 계좌가 시세조종에 이용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공범은 아니라고 봤다. 명태균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 제공받았다는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는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근거를 댔다.
재판부는 또 통일교로부터 샤넬백과 그라프 목걸이를 받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최초로 받은 샤넬백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통상 ‘준비성 뇌물’로 평가될 수 있는 사안이지만, 재판부는 구체적 청탁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에서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법원은 유독 김건희 특검이 기소한 사건에 대해선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 공소기각 결정을 내리고 있다. 공소기각은 공소제기가 형식적 소송조건을 결여한 경우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사건의 실체를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절차다.
법원은 김 모 국토교통부 서기관의 뇌물 사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증거인멸 사건, 이른바 ‘김건희 집사’로 불린 김예성씨의 업무상 횡령 사건 등에 대해 특검법상 수사 대상과 합리적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잇따라 공소기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이 있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유죄 추정’이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원이 유독 특검 기소 사건에서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법과 양심에 따른 판결에서 ‘양심’은 직업적 양심을 뜻하며, 국민의 눈높이 역시 고려하라는 취지”라며 “최근 판결들에서 이러한 고려가 충분히 반영됐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