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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자본시장의 부활과 중국 테크 굴기

2026-02-13 13:00:01 게재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2026년 현재, 글로벌 자본시장의 거대한 물줄기가 다시금 홍콩으로 회귀하고 있다. 한때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중 패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시아의 금융 허브’ 지위가 흔들린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작년부터 시작된 중국 첨단 기술 기업들의 홍콩행 ‘엑소더스’는 홍콩이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슈퍼 커넥터(Super Connector)’임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상장의 질적 변화다. 단순한 제조나 소비재 기업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차세대 반도체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들이 홍콩 증시를 그들의 ‘자본 성소’로 선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금 조달의 목적을 넘어, 미국의 기술 봉쇄에 맞선 중국의 ‘기술-자본 자립 선언’이자, 월가와 중동 자본이 중국의 미래 가치에 다시 베팅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서막이다.

나스닥 대신 홍콩을 택한 테크 유니콘들

과거 중국 테크 기업들에게 나스닥(NASDAQ)은 성공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미국 회계감독위원회(PCAOB)의 규제 강화와 중국 정부의 데이터 보안법은 기업들을 진퇴양난에 빠뜨렸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홍콩 거래소(HKEX)가 단행한 상장 규제 완화(Chapter 18C 등)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초기 단계의 첨단 기술 기업도 시가총액 요건만 갖추면 상장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최근 홍콩에 상장했거나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이들이 왜 ‘중국판 엔비디아’, ‘중국판 오픈AI’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의 수출 통제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자체적인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구축하고 독자적인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완성해냈다.

자본은 영리하다. 규제가 장벽을 만들 때, 자본은 그 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통로를 찾는다. 그리고 2026년 현재 그 통로는 단연 홍콩이다.

월가의 변심 “비중축소에서 매수로”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월가는 중국 주식에 대해 ‘투자 불가(Uninvestable)’라는 가혹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2025년 말부터 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메이저 IB들의 리포트는 이제 중국의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월가는 중국 AI 기업들이 ‘AGI(일반인공지능)’라는 거대 담론에만 매몰되지 않고, 실제 산업 현장에 즉각 적용 가능한 ‘버티컬 AI’ 분야에서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제조, 물류, 의료 분야에 이식된 중국의 AI 솔루션은 이미 막대한 현금 흐름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월가의 시각에서 이는 ‘꿈’이 아닌 ‘실적’으로 증명되는 투자가치가 되었다.

최근 홍콩 증시의 큰손은 더 이상 서구권 자본만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PIF(국부펀드)와 아부다비의 무바달라 등 오일 머니가 홍콩을 경유해 중국 테크 기업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와 공모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월가는 이러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중동 자본과 연합하여 홍콩 증시의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홍콩 증시를 뒤흔드는 ‘테크 3인방’

지푸AI(Zhipu AI)와 미니맥스(MiniMax)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칭화대 출신 천재들이 설립한 지푸AI는 최근 홍콩 상장에서 기관 투자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들의 강점은 ‘오픈 소스 생태계’를 장악했다는 점이다. 단순한 모델 개발사가 아니라 중국 AI 생태계의 ‘운영체제(OS)’가 되고 있다. 플랫폼을 지배하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 미국의 메타(Meta)가 Llama로 시장을 장악하듯, 지푸AI는 중국 내 수만 개의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자신의 모델 위로 끌어들였다.

미니맥스 (MiniMax, HKG: 2675)는 중국 내 B2C AI 서비스에서 가장 강력한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AI 4대 천왕’ 중 하나이다. 2026년 초 홍콩 상장 당시 기관 청약 경쟁률이 역대급을 기록하며 상장 첫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2배 가까이 치솟았다. 골드만삭스는 미니맥스의 글로벌 챗봇인 ‘토키(Talkie)’의 사용자 유지율(Retention)을 높게 평가하며, 단순한 모델 개발사를 넘어 ‘글로벌 소셜 AI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 알리바바와 홍콩계 자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중국 내 LLM 중 가장 낮은 연산 비용으로 최고 효율을 내는 ‘경제적 모델’을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의 정점인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포니에이아이(Pony.ai)와 위라이드(WeRide)의 약진이 눈부시다. 자율주행은 데이터 싸움이다. 중국의 복잡한 도로 환경에서 축적된 방대한 주행 데이터는 미국의 테슬라조차 쉽게 넘보기 힘든 해자(Moat)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포니에이아이 (HKG: 2026 / NASDAQ: PONY)는 도요타와의 합작을 통해 ‘로보택시’의 경제성을 입증했다.

2026년 상반기 기준, 광저우와 베이징 일부 구역에서는 이미 운전석이 비어 있는 로보택시가 일상이 되었다. 이리하여 자율주행 로보택시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수익성 분기점’에 근접한 기업이 되었고, MSCI 중국 지수(MSCI China Index)에 로보택시 기업 최초로 편입되었다. 이는 글로벌 패시브 자금의 유입을 보장하는 강력한 신호이다. 2026년 말까지 운영 차량을 3000대 이상 확대할 계획이다.

엔비디아의 칩을 구할 수 없다면 직접 만들겠다는 의지가 투영된 곳이 비렌 테크놀로지(Biren Technology)와 호라이즌 로보틱스(Horizon Robotics)다. 호라이즌 로보틱스 (HKG: 9660)는 스마트 차량용 연산 솔루션(칩) 분야에서 엔비디아의 강력한 대항마로 꼽힌다. 현재 단순 칩 설계를 넘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며, 2026년 양산 예정인 중저가형 전기차들의 표준 ADAS 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특히 폭스바겐과의 합작법인(CARIAD)을 통한 매출 본격화로 2025년 하반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JP모건은 “미국 규제가 강화될수록 중국 자동차 OEM들의 호라이즌 칩 채택률은 강제적으로 높아질 것”이라며 ‘규제의 역설적 수혜주’로 분류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이들에게 오히려 ‘강제적인 시장 점유율 확보’라는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 내수 시장이라는 확실한 테스트베드를 가진 이들의 성장은 하방 경직성이 강하다.

한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중국 기업들이 홍콩으로 몰려가 자본을 흡수하고 기술을 고도화하는 과정은 한국 경제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홍콩은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테크 기업들을 위해 상장 문턱을 낮추고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등 친기업적 환경을 구축했다. 우리 자본시장도 유망 테크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도록 규제 혁신에 속도를 내야 한다. 둘째, 중국의 자율주행 기업들이 홍콩 자본을 업고 글로벌로 진출할 때, 우리 부품·센서 기업들이 그 생태계에 어떻게 올라탈지 고민해야 한다. 적대적 경쟁보다는 가치사슬(Value Chain)의 핵심 고리를 선점하는 영리함이 필요하다.

셋째,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분산의 미학’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축인 홍콩 상장 테크 기업들에 대한 비중 조절은 자산 배분 전략상 필수적인 선택이 되었다.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을 관망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파도에 올라타 새로운 부의 기회를 창출할 것인가? 현재 홍콩 증시의 테크 기업들은 ‘기술적 완성도’와 ‘자본의 유입’이 만나는 골든 크로스 지점에 있다. 다만, 미국의 추가 규제 가능성과 홍콩 증시 특유의 높은 변동성을 고려해야 한다. MSCI 지수 편입 종목 위주로 분할 매수하거나 관련 테크 ETF를 통해 시장 전체의 성장을 공유하는 전략이 유효하다.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 미국 어바인대(UI)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