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카르텔 4천억 ‘철퇴’…부당이득 맞먹는 과징금

2026-02-13 13:00:20 게재

공정위, 제당 3사에 역대급 과징금 … 재계 “시장현실 무시한 가혹한 처사”

“반복적 범죄에 정당한 응징” … 공정위, 밀가루·생필품 전방위 조사 예고

국민밥상의 기초인 ‘설탕’ 시장이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설탕시장을 분점하고 있는 제당 3사에 4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하며 ‘담합(카르텔)범죄 근절’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담합사건 제재 수준을 넘어,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독과점 구조와 반복되는 카르텔 범죄에 대한 국가적 경고로 풀이된다.

13일 공정위 핵심관계자는 “설탕 3사는 국민들이 코로나19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가격을 조작해 자사의 이익 추구에만 골몰했다”면서 “앞으로도 국민 식재료를 상대로 한 약탈적·반복적 담합범죄에는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제재와 부당이득에 맞먹는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12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3개 설탕 제조판매 사업자의 담합사건 심의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공정위는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에 대해 행위 금지명령과 시정명령, 그리고 과징금 총 4083억원을 부과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4천억대 과징금 부과 배경은 = 실제 공정위가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제당 3사’에 부과한 4083억 원의 과징금은 그 규모 자체로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공정위는 예상을 뛰어 넘는 강도 높은 제재 근거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합의의 계획성과 은밀성이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이들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4년간 대표급부터 실무팀장급까지 직급별 연락망을 가동해 총 8차례나 가격 인상 폭과 시기를 조절했다. 원당 가격이 오를 때는 즉시 가격을 올리고, 내릴 때는 인하 폭을 최소화하거나 시기를 늦추는 방식으로 부당 이득을 챙겼다. 특히 특정 업체가 수요처별로 협상을 전담하는 ‘나눠먹기’식 담합을 통해 시장 경쟁을 원천 봉쇄했다.

담합이 이뤄진 시기도 비난 가능성을 높였다. 담합이 이루어진 시기는 전 국민이 코로나19 팬데믹과 경기 침체로 극심한 고통을 겪던 때였다. 생활 필수품인 설탕 가격을 조작해 물가 부담을 가중시킨 행위는 국민 경제를 볼모로 한 ‘약탈적 행위’라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과징금 규모가 커진 또 다른 배경은 ‘상습성’이다. 이들은 이미 2007년에도 같은 담합행위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법을 어기고 처벌받은 후에도 다시 담합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심지어 2024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1년 이상 담합을 유지하고 공동 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조사 방해에 가까운 대담함을 보였다는 점이 가중 처벌의 배경이 됐다.

◆재계와 전문가의 엇갈린 반응 = 재계와 전문가 반응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재계는 한마디로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제당 업계 관계자들은 “원당 가격 변동성과 고환율 등 유례없는 경영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정보교류 측면이 컸다”고 항변한다. 특히 영업이익 대비 과징금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기업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실제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적자이고, 나머지 2곳의 연간 순익도 수백억원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공정위가 정부의 ‘물가 잡기’ 정책에 발맞춰 기업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 아니냐는 ‘정치적 제재’ 의혹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대체로 공정위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경제학계의 한 교수는 “설탕은 수입 장벽과 장치 산업의 특성상 신규 진입이 거의 불가능한 완전 독과점 시장”이라며, “이런 시장에서 담합은 경쟁의 싹을 자르는 행위이기에 일벌백계가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역시 “재범이라는 점과 조사 중에도 담합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업 윤리의 부재를 증명한다”며 제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역대급 과징금 “부당이득 환수” = 이번 과징금은 2010년 LPG 담합 사건(6689억 원)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사업자당 평균 부과액으로 따지면 역대 1위다. 일각에서 부과 규모가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공정위는 ‘부당 이득의 환수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설탕은 중간재로서 빵, 과자, 음료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 가격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친다.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액의 총합을 고려하면 4000억 원대 과징금이 결코 과도한 액수가 아니라는 논리다. 또한 과거의 솜방망이 처벌 탓에 담합의 고리를 제대로 끊지 못했다는 자성도 작용했다. 설탕3사가 2007년 담합제재를 받고도 다시 가격조작에 나선 것은 “제재를 받더라도 담합하는 것이 더 이익”이란 계산 때문이란 것이다. 문재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설탕담합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이 담합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처벌의 고통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것도 공정위 제재의 큰 효과”라고 설명했다.

◆“담합은 관행, 시대 끝났다” = 이번 설탕 담합 제재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공정위 안팎의 시각이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생 밀착형 품목’에 대한 전방위 조사를 예고했다.

이미 공정위는 식료품 분야 담합의혹을 여러건 들여다보고 있다. 밀가루를 비롯해 전분당, 계란, 돼지고기 등 국민 식생활과 직결된 품목들에 대해 담합 조사를 진행 중이다.

설탕 담합 사건에서 보여준 ‘무관용 원칙’이 이들 품목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독과점 시장의 구조적 개선”도 강조했다. 공정위는 제당 3사에 대해 향후 3년간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보고하도록 하는 ‘가격 변경 내역 보고명령’을 내렸다. 사후에 한번 제재로 그치지 않고, 상시 감시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독과점 구조가 고착화된 시장을 집중 관리 대상으로 삼아 담합의 토양 자체를 없애겠다는 계획이다.

공정위는 기업 스스로 지배구조와 준법 시스템을 강화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아울러 공정위는 담합 가담자에 대한 내부징계규정 신설도 명령했다. 이는 이번 담합이 개인의 일탈이나 관행이 아닌 ‘경영상의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공정위는 “설탕 담합 사건은 국가가 보호해준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누리던 기업들이 어떻게 국민의 고통을 외면했는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주 위원장은 “이번 공정위 전원회의 결정은 시장경제의 근간인 ‘공정경쟁’을 복원하려는 시도”라면서 “기업들도 이제 담합을 ‘관행’으로 여기는 시대가 끝났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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