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공급난 ‘이중고’…수입 먹거리 물가인상 ‘비상’
환율 상승에 국제시세보다 원화 수입가 더 가파르게 상승
수입원가 상승이 가공식품·외식물가 인상 압박 요인으로
닭고기 수입물가 31% 급등 … 서민 먹거리 ‘치맥’도 옛말
가계실질소득 감소에 먹거리물가 상승, 소비 위축 악순환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빨간불이 켜졌다. 고환율과 국제 공급망 차질이란 ‘쌍둥이 악재’가 겹치면서 수입 소고기와 닭고기 등 주요 먹거리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어서다.
특히 국제 시세보다 국내 수입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되는 ‘환율의 역설’에 소비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9일 한국은행의 수입물가지수 추이를 보면 지난달 원화 기준 수입 식품 물가는 축산물과 곡물을 중심으로 큰 폭으로 올랐다. 가장 두드러진 품목은 닭고기다. 닭고기의 원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한 달 사이에만 30% 넘게 급등했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역시 각각 13.7%, 8.3% 오르며 축산물 원가 부담을 키웠다.
◆고환율 장기화, 물가 부담 키워 = 주목할 점은 고환율이 수입가 상승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닭고기의 경우 국제 시세인 계약통화 기준 상승률은 28.2%였으나, 원화로 환산한 수입가는 31.1%가 올랐다. 환율 탓에 국내 수입업자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2.9%p 더 늘어난 셈이다.
치즈와 밀은 국제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 영향으로 국내 가격은 오히려 오르거나 하락 폭이 제한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특히 국내 수입 소고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산 소고기의 가격 강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 현지 생우 가격은 1년 전보다 20% 이상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에 근접했다. 2022년 발생한 대규모 가뭄으로 목초지가 황폐화되면서 소 사육 마릿수가 1951년 이후 7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공급량의 선행지표인 송아지 생산량 역시 194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어 소고기값 고공행진은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수입소고기값 비상 = 국내 유통가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산 냉동 갈비 가격은 관세 인하 혜택에도 불구하고 이미 전년 대비 14% 이상 상승하며 100g당 4400원 선을 넘어섰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미국산 소고기 갈비(냉동) 가격은 이미 종전 최고치였던 2022년 수준을 넘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맞물려 수입 소고기를 주재료로 쓰는 갈비탕, 설렁탕, 스테이크 등의 외식 메뉴 가격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대형마트들은 호주, 브라질, 아일랜드 등으로 수입처 다변화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요식업계가 부족한 물량을 채우기 위해 호주산 등을 대량 구매하면서 전 세계적인 소고기값 동반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국내 농산물 생산자물가까지 전월 대비 5.8% 상승하는 등 내외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입 단계의 원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 가격과 외식 물가에 반영된다.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서민들의 식탁 물가 잔혹사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치맥도 이젠 사치? =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즐기던 ‘치맥(치킨과 맥주)’이 이제는 부담스러운 ‘사치’가 되고 있다. 고환율 여파로 닭고기 수입 원가가 30% 이상 폭등하고, 소고기와 밀가루 등 주요 식자재 가격이 줄줄이 오르면서 외식업계의 가격 인상 압박이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먹거리 물가 동향을 살펴보면 수입 식품의 원가 상승세가 무섭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원화 기준 닭고기 수입물가지수는 최근 150.57에서 197.44로 한 달 새 31.1%나 뛰어올랐다. 환율이 오르면서 국제 시세보다 국내 수입 가격이 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 업계는 물론 일반 음식점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입산 육류의 원가 부담은 이제 자영업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식업계는 그간 소비자들의 눈치를 보며 인상 시기를 조절해 왔으나, 이제는 한계에 부딪혔다는 반응이다. 식품업체들이 사용하는 소맥(밀)과 치즈 등 부재료 가격 또한 환율 때문에 국제 시세 하락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식자재의 원가 상승은 결국 ‘라니냐’ 등 기후 위기와 맞물려 가공식품 전반의 도미노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먹거리 물가 상승이 서민 가계의 실질 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생산자물가가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시차를 고려할 때, 올 상반기 외식 물가의 추가 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 2025년 말 기준 농산물 가격이 이미 5.8% 상승하며 생산자물가지수를 끌어올린 점도 악재다.
정부는 수입처 다변화와 관세 지원 등을 통해 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환율이라는 거시경제적 변수와 미국의 소고기 공급 부족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장바구니 물가 들썩 = 고환율에 따른 수입물가도 문제지만 국내 가공식품과 외식물가 흐름도 심상찮다.
19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 지수는 118.03(2020년=100)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 상승했다.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 정책목표치가 2.0%임을 고려하면 ‘물가안정국면’이라고 판단할만한 수치다.
문제는 먹거리 물가다. 농축산물 물가(2.6%)는 전체 물가(2.0%) 보다 여전히 높았다. 농축산물 중 농산물은 지난해 대비 소폭(0.9%) 올랐지만, 축산물은 4.1% 상승했다. 수산물도 5.9% 뛰었다. 축산물 물가 상승은 사육 마릿수 감소, 가축전염병 확산 등 변수가 주효했다.쌀(18.3%), 고등어(11.7%) 사과(10.8%), 국산쇠고기(3.7%) 등 품목에서 많이 올랐다. 이밖에, 외식 물가와 가공식품 물가도 각각 2.9%, 2.8% 올랐다.
이같은 먹거리 물가 상승세는 소비자 지출이 확대하는 설 명절 직전까지 이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가격정보에 따르면, 사과는 후지 상품 10개 평균 소매가격이 지난 13일 기준 2만8582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와 평년 대비 3% 이상 비쌌다. 딸기도 100g(상품) 가격이 1987원으로 작년보다 7.6% 비싸며 평년보다도 20.9% 높았다.
고환율 영향을 받는 수입 과일과 수입산 육류도 가격 강세를 보였다. 망고는 1개(상품) 5874원으로 지난해 대비 35.2% 비싸다. 평년보다도 13.4% 높다. 오렌지는 10개(상품) 2만4448원으로 지난해보다 16.7% 올랐으며 평년 대비 43.7% 비싸다. 수산물도 마찬가치다. 고등어는 국산 염장 중품 한 손 가격이 6000원 이상으로 평년보다 50% 이상 비쌌다. 갈치는 국산 냉동(대)이 1만원대로 평년보다 10% 이상 올랐다.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 부담 완화를 위한 대책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장관급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민생물가 특별관리에 나서고 있다. 불공정거래, 유통구조 왜곡 등을 바로잡아 서민 부담을 덜겠다는 취지다.
TF는 경제부총리(의장), 공정거래위원장(부의장)을 중심으로 불공정거래 점검팀, 정책지원 부정수급 점검팀, 유통구조 점검팀 등 3개 팀으로 이뤄졌다. 단기적인 가격 억제에 머무르지 않고 물가 상승의 근본 원인을 톺아보고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