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2.7%, 고용은 정체…미국 ‘반쪽짜리 호황’

2026-02-19 13:00:09 게재

AI·설비투자가 성장 견인

전후 처음인 이례적 국면

블룸버그는 18일(현지시간) 미국 경제가 고용 없는 호황이라는 이례적 국면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24일 발표될 GDP에서 2025년 성장률이 2.7% 안팎으로 전망되지만, 고용은 거의 늘지 않았다.

성장과 고용의 괴리는 2000년대 초 닷컴 붕괴 이후 나타난 고용 없는 회복을 떠올리게 하지만,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경기침체 없이 확장 국면 후반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케이피엠지(KPMG)의 다이앤 스원크는 확장 후반부에서 이런 패턴을 본 적이 없어 방향 판단이 어렵고, 한쪽 다리만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안정하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4일 국정연설에서 성장 지표를 적극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에는 소비가 버티고 주가가 오르며, 인공지능(AI) 투자 붐이 기업 설비투자를 끌어올렸다. 무역·이민 정책 변화가 불확실성을 키웠지만 성장세는 유지됐다. 18일 발표된 지표에서도 기업투자가 연말 강하게 마무리됐고, 제조업 생산은 1월 거의 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트럼프 측은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1990년대 앨런 그린스펀이 생산성 상승을 근거로 고성장·저물가 가능성을 언급했던 전례를 거론한다. 하지만 현재 경제 상황은 1990년대보다 2000년대 초에 더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벤 버냉키가 2003년 연설에서 고용 없는 회복을 설명했듯, 2025년에는 산업 전반에서 채용이 위축되며 전국 고용 인원이 사실상 정체했다. 2000년대 초에는 제조업 고용 감소가 핵심이었고, 사무·행정 지원 직군도 큰 폭의 일자리 감소를 겪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마이클 피어스는 과잉 채용 뒤 생산성 급등, 기술 진보, 정책 불확실성 확대가 맞물리면 노동시장이 경기 충격을 흡수할 방화벽 역할을 못해 침체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둔화는 특히 대졸자와 화이트칼라에 집중되고 있다. 사무·행정 지원 등 사무직 실업이 2025년 가장 크게 늘며 실업자 구성이 블루칼라에서 화이트칼라로 옮겨가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AI가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GDP와 일자리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아직 AI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를 두고는 의견이 갈린다. 파월 의장은 생산성 상승이 대규모 언어모델 확산 이전인 5~6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했고, 다른 연준 인사들은 팬데믹 이후 공정 개선과 조직 재편의 효과가 이제 통계에 반영되고 있다고 본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2026년 성장 전망을 올리면서도 실업률 전망치는 유지했다.

2월 11일 고용보고서에선 2025년 고용 증가폭이 기존 발표보다 약했지만 1월 민간 고용은 17만2000명 늘어, 지난해 증가분의 거의 절반을 한 달에 채웠다. 다만 증가분은 보건의료·사회복지와 건설에 집중됐고, 화이트칼라 중심 업종은 부진했다. 비용 절감의 과실은 기업 이익률과 주가로 이어져, 주가지수는 사상 최고치 근처를 유지하고 이익률도 전후 최고 수준에 가깝다.

산탄데르 캐피털 마켓의 스티븐 스탠리는 “AI가 향후 몇년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아직 고용에 결정적 충격을 줬다고 보긴 이르다”고 했다. 후버연구소의 미키 레비는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생산성만으로 성장을 떠받치기 어렵다”며 “고용 정체가 길어지면 결국 성장도 둔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에서는 이런 괴리가 일시적 조정인지, 구조적 변화의 신호인지가 향후 통화정책과 경기 흐름을 가를 핵심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성장은 이어지지만 고용이 따라오지 않는 이 이례적 조합이 미국 경제의 다음 국면을 어떻게 규정할지, 연준과 시장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이주영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