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시장도 ‘짬짜미’…제분업계에 역대급 ‘과징금 폭탄’예고

2026-02-20 13:00:03 게재

공정위 밀가루담합 심사보고서 발송 … 7개 제분사, 6년간 가격·물량 담합

관련 매출액만 5조8천억대 추산 … 라면·빵 등 가공식품 물가인상 주범 지목

관련 매출의 최대 20% 과징금 가능 … 설탕 담합사건엔 15% 과징금 부과

국민 식생활의 필수 식자재인 밀가루 시장에서 지난 6년간 조직적인 가격 담합이 이어져 온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확인됐다. 설탕 담합에 이어 밀가루 업계까지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최근 수년간 밥상머리 물가를 위협해온 식료품 업계의 고질적인 담합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7개 밀가루 제조 및 판매 사업자가 장기간에 걸쳐 판매가격을 올리고 물량을 배분하기로 합의한 행위를 적발, 이들에게 위법 사실과 조치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전날 송부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는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대선제분, 삼양사, 사조동아원, 삼화제분, 한탑 등 국내 밀가루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7개 사다.

국민 식생활의 필수 식자재인 밀가루 시장에서 지난 6년간 조직적인 가격 담합이 이어져 온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 확인됐다. 연합뉴스

◆제분7사가 시장 88% 장악 =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2019년11월부터 2025년10월까지 약 6년 동안 라면·제빵·제과사 등 대형 수요처에 공급하는 B2B(기업간 거래) 물량은 물론 대리점을 통한 간접 거래 물량까지 치밀하게 관리하며 경쟁을 제한해 왔다.

공정위가 산정한 이 사건 관련 매출액은 무려 5조8000억원대에 달한다. 이는 2024년 기준 국내 밀가루 B2B 시장 점유율의 88%에 해당하는 규모다. 사실상 국내에서 유통되는 밀가루 대부분이 담합의 영향권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민생 물가 안정을 저해하는 매우 중대한 위법 행위’로 규정했다.

밀가루는 빵과 면, 과자 등 가공식품 전반의 원가를 결정하는 핵심 기초 소재다. 제분사들이 가격을 담합해 높게 유지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식품업체를 거쳐 최종 소비자인 국민에게 전가된다. 최근 이어진 ‘밀크플레이션(밀가루+인플레이션)’의 이면에 기업들의 부당한 공동행위가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공정위는 이들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막대한 규모의 과징금 부과 의견을 제시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담합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관련 매출액이 6조원에 육박하는 만큼, 최종 심의 결과에 따라 단일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의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검찰은 지난 1월 고발 요청을 통해 해당 7개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기소한 상태다.

◆과징금 규모 역대급 전망 = 공정위는 이들 7개 제분사에 8주의 의견 제출 기한을 부여한 뒤, 가급적 신속하게 전원회의를 개최해 최종 제재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시장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암적 존재인 담합을 근절하겠다”면서 “민생에 피해를 주는 불공정 행위에는 예외 없는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개별 사건 처리를 넘어, 정부의 강력한 물가 안정 의지를 시장에 전달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공정위는 향후 관계 부처와 협력해 생필품 전반에 걸친 담합 유인을 실질적으로 차단하는 범부처 총력 대응 체계를 가동할 계획이다.

설탕에 이어 밀가루까지 식탁 물가의 뿌리를 흔드는 대형 담합 사건이 잇따라 적발되면서, 기업들의 윤리경영에 대한 국민 불신은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국민 체감 물가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공정위의 이번 ‘철퇴’가 실제 장바구니 물가 하락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가격 재결정 명령 카드 꺼내나 = 한편 향후 밀가루 담합 사건의 제재수위를 확정할 공정위 전원회의가 수조원대 과징금과 더불어 ‘가격재명령 결정’을 부과할 지도 관심이다.

공정위 조사와 검찰 수사에 따르면 제분 7사는 2020년부터 5년간 가격 변동 폭과 시기를 밀약했으며, 담합 규모는 약 6조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제분업계의 담합 악습이 상습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스스로 가격을 다시 책정해 보고하게 함으로써 소비자 피해를 신속히 회복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정위 사무처가 사건을 전원회의에 상정하며 조치 의견으로 가격재결정 명령을 요청할 수도 있고 전원회의가 직권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제분업체들은 지난 2006년 담합 행위가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과징금과 더불어 가격 재결정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 60일 이내에 각 사가 밀가루 판매 가격을 다시 결정하고 그 근거와 결과를 보고하라는 것이 당시 명령의 요지였다.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릴 경우 공정위는 시한을 정할 수도 있다. 일정 기간 지난 후 다시 부당하게 올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가격을 보고하게 해 감시를 강화하는 방법도 있다.

20년 전 밀가루 담합 제재 때 공정위는 8개 업체에 과징금 435억원과 시정 명령을 부과했다.

당시 공정위는 밀가루 가격 생산자 물가 인상률이 6년간 약 40%에 달해 공산품 평균(약 10%)을 크게 웃돌았다며 담합 관련 매출액이 4조1522억원 정도라고 추산했다. 일부 제분사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최근 일부 제분사가 가격을 4~6% 인하했으나, 공정위는 이것이 ‘보여주기식’인지를 면밀히 살필 계획이다. 앞서 설탕 담합 사건에서는 자발적 가격 인하가 참작되어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부과되진 않았다.

하지만 밀가루의 경우 담합 효과가 여전하다고 판단되면 강제적인 가격 재산정 명령이 내려질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담합으로 왜곡된 시장 가격을 정상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공정위는 담합 효과가 완전히 해소됐는지 면밀하게 판단해 피해를 신속하게 회복하도록 가격 재결정 명령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검찰은 제분 7사가 밀가루 가격 변동 여부, 변동 폭·시기 등을 합의했다고 결론 짓고 6개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기소했다. 담합 규모는 5조9913억원으로 추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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