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 빠진 행정통합 속도전, ‘대통령 공약 위반’ 논란

2026-02-20 13:00:01 게재

이 대통령 언급 후 두달 만에 상임위까지 통과

국정과제 “마을부터 국정 전반, 시민참여·숙의”

여당 “2월까지 통과 못하면 10년 내 어려워”

“최소한의 검토 안 해 지역 갈등 부추길 수도”

청와대 발 ‘행정통합’ 법안 속도전으로 공론화가 생략되면서 ‘시민 공론화’를 앞세운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민석 국무총리가 제시한 마지노선인 ‘2월’ 안에 본회의를 열어 행정통합법을 처리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이다.

20일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공론화를 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이번에 처리하지 못하면 이재명정부에서 하기 어렵고 다음 정부도 쉽지 않아 10년 내에는 행정통합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대구경북, 광주전남 통합법은 찬성하면서 대전충남 통합법에 반대하고 있어서 이를 분리해서 처리할지, 아니면 모두 밀어붙여 통과시킬지는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대전충남 통합과 관련해서는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들이 반대하고 있어 실제 통합법이 통과되더라도 성사될 가능성을 봐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표 계산을 하면서 대전충남 통합만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힘이 입장을 명확히 확인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일단 민주당은 오는 24일에 3개 행정통합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의 행정통합 발언 이후 두 달여 만에 법안을 만들고 3번의 법안소위 심사를 거치면서 시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예외와 특례의 남발, 희박한 지속가능성, 지역 간 형평성 부족을 지적하면서 “주민 참여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시간 단축과 비용을 이유로 지방의회 의결로 대신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지난 9일 한 차례의 공청회와 3일간 법안심사소위 논의를 거쳐 전체회의까지 졸속으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시·도 주민은 어떤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설명 듣지 못하고, 의견을 제시하거나 참여할 시간과 기회조차 충분히 보장받지 못했다”고 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결사반대’ 대전시민들로 구성된 대전범시민연대 관계자들이 13일 오후 대전시의회에서 ‘대전·충남 졸속 통합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국회 행안위 역시 광주전남, 대전충남, 대구경북 행정통합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위로부터의 행정체제 개편은 아래로부터의 방식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주민 의사의 반영, 지역의 수용성 확보 등 민주적 측면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며 “현재 추진되고 있는 행정통합 논의는 거시적 관점에서 전체적인 중앙과 지방의 사무·재정 권한 등의 배분에 관한 논의보다는 개별 지역 차원에서 요구하는 사무·재정 특례를 어떻게 부여할지에 대한 논의로 이뤄져 중앙정부와 지역 간, 지역 상호 간 및 각종 이해관계자들 간의 이견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행정통합 논의가 6.3 지방선거를 통해 통합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것을 목표로 이뤄짐에 따라 지역에 부여할 각종 행·재정 특례 및 권한이양 수준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지역의 다양한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는 데 일정 제약이 있다”고 했다.

여론 수렴 과정이 생략된 청와대와 민주당의 행정통합 속도전이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 ‘회복·성장·행복으로 국민통합’을 슬로건으로 앞세워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요 정책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 절차 도입’ ‘대화와 타협, 숙의를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는 참여적 의사결정의 제도 기반 구축’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국정기획위에서는 이 공약을 토대로 “국민 중심의 통합과 개혁을 위해 참여와 소통을 국정 원리로 제도화하고 시민 숙의를 기반으로 한 상호 존중과 신뢰의 협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며 “마을에서 국정 전반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참여와 숙의, 소통과 협치를 정착시키기 위한 종합적인 추진 전략 마련과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특히 “중요한 정책 과제에 대해 숙의 공론을 통한 정책 형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참여와 소통 기반을 확대하겠다”며 “숙의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집단의 균형 있는 참여를 확보해 논의의 정당성과 대표성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은 의원입법 방식으로 ‘시민참여기본법안’을 지난해 말에 국회에 제출했다. 이해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시민 정책참여·숙의공론화 등 시민참여 추진 체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고 ‘시민은 공공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자율적인 시민사회 활동을 수행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시민정책참여, 시민숙의·공론화, 민주시민교육, 시민사회 활성화 등을 위한 종합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마을부터 국정 운영까지 시민들이 참여하는’ 밑그림이 담긴 셈이다.

국정기획위에서 국민주권강화와 통합TF팀장을 맡았던 이태호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행정통합은 주민들 특히 주민자치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서 공론화를 해야 한다고 본다”며 “공론화 과정이 필요한데 시간이 촉박해서 문제”라고 했다.

금창호 전 지방행정연구원 자치행정연구실장은 “3개의 행정통합 법안과 관련해 제도 검토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보편적이고 타당한 제도 설계가 돼 있지 않아 출범 이후에 초래될 파장은 누구도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최소한 전문가들 간의 갑론을박할 시간이라도 가졌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도 없이 결정이 됐다”며 “절대적 배고픔보다 상대적 배고픔이 더 큰 건데 지역 간 재정 확보 경쟁으로 오히려 갈등이 더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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