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왜 국민은 성장을 체감하지 못하나

2026-02-23 13:00:01 게재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에서 1.9%로 소폭이나마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수출 회복세가 뚜렷하고 그에 따른 설비투자 확대와 경상수지 흑자 폭 개선 등 주요 거시지표들은 분명 지표상의 봄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숫자 뒤에 가려진 민생의 체감온도는 사뭇 다르다. 민간소비와 서비스업, 자영업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성장이 국민 개개인의 삶으로 흐르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세대 걸쳐 고착화되고 있는 경직적 지출의 함정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세대에 걸쳐 고착화되고 있는 경직적 지출의 함정이다. 먼저 청년층과 30대는 고용시장의 구조적 변화로 인해 출발선부터 제약받고 있다. 취업 지연과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의 확산, 여기에 AI의 확산까지 소득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작년 6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세대별 소비성향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30대 이하의 주거비 비중은 상승한 반면 평균소비성향은 하락했다. 소득이 늘어도 이자와 집세 같은 경직 비용이 먼저 빠져나가면서 소비로 쓸 수 있는 몫이 출발선에서부터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4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중장년층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사교육비와 캥거루족이라 불리는 성인 자녀 부양의 이중고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후 세대도 어렵다. 장수 위험과 자녀 지원에 대한 불안감, 자산세 증가 위험에 대한 대비로 지갑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복합적이고도 구조적인 위기를 대하는 정부의 인식과 정책 담론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정책 논의는 고용 교육 노후불안이라는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루기보다 부동산과 가계부채라는 단일 프레임에 집중되고 있다. 주가가 급등하며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흐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주거비 상승은 소비위축의 원인 중 하나다. 하지만 자가 점유율을 높이면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처방이며 실제 효과도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현재 시행 중인 강력한 수요 억제와 거래규제, 세제 압박과 같은 정책들이 의도와 반대의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다주택자를 압박해 임대물량이 없어지면 희소성이 커지는 것도 하나의 예다. 2017년 이후 임대사업자 제도 손질과 각종 중과 조치 이후 임대주택 수가 줄어들고, 전월세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임대인은 늘어난 세금과 규제 리스크를 월세 형태로 임차인에게 전가할 유인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청년과 중산층은 원하는 지역에 거주하기 위해 더 비싼 주거비용을 지불하게 되고, 이는 다시 내수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장기성장 위해 교육과 고용 문제 더 구체적으로 다뤄져야

KDI의 성장률 상향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삶의 질 개선을 의미하려면 더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 성장률 수치를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과실이 각 세대의 실질 소득으로 흐르게 하고, 이것이 다시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복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두에게 집을 사게 하는 것보다는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률을 일정 수준으로 관리하는 목표를 세우고, 독일처럼 장기, 양질의 임대 공급에 대해서는 인센티브와 강력한 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장기성장을 위해 부동산보다 중요한 교육과 고용 문제가 지금보다 더 구체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성장률이 2%를 넘어 3%에 도달하더라도 대다수 국민에게 성장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석원 전 SK증권 미래사업부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