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환경과학 이야기
급격한 빛 변화에 취약한 자율주행, 액체금속에서 답 찾다
생체모방체제로 인식률 15%p 높여
역광 등 급격한 빛 변화에 취약한 자율주행차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인간 눈은 망막 홍채 신경 등이 알아서 반응하면서 자동으로 조절되므로 어둡든 밝든 복잡한 배경이든 잘 볼 수 있다. 하지만 기계 눈(머신 비전 시스템)은 광범위한 조도 환경에서 시각 인식을 구현하기 위해 복잡한 알고리즘에 의존한다. 이는 시스템 복잡성을 증가시키면서 처리 효율 저하나 전력 소비 증대 등 여러 한계를 낳는다.
23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의 논문 ‘액체금속 형태변환을 이용한 생체모방 적응형 동공반사 기계 시각시스템’에 따르면, 역광이나 과노출 상황에서 자율주행차의 시각 인식 문제를 하드웨어 차원에서 해결하는 인공 눈 시스템이 개발됐다. 액체금속을 이용해 빛에 따라 자동으로 동공 크기를 조절하는 게 특징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와 중국 웨스트레이크대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이 시스템의 핵심은 갈륨-인듐 합금 액체금속(EGaIn)으로 만든 인공 동공이다. 상온에서 액체 상태인 이 금속에 전기를 가하면 표면이 산화되면서 표면장력이 낮아져 채널을 따라 퍼진다. 빛이 강해지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전기 신호를 보내고 액체금속이 퍼지면서 동공이 좁아진다. 빛이 약해지면 반대로 액체금속이 수축하며 동공이 다시 열린다. 생체 동공 반사를 물리적으로 재현한 셈이다.
자율주행차 카메라는 급격한 조명 변화에 취약하다. 자율주행에서 카메라는 다양한 이미지 인식 및 처리 작업을 수행하는 핵심 시각 센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물체 추적·탐지·인식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러한 작업은 태양 눈부심 속 주행이나 상향등에 노출되는 것과 같이 노이즈가 많고 복잡한 환경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역광 조건에서는 카메라와 기타 센서가 도로 위 장애물과 보행자를 정확히 탐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해 자율주행 시스템은 이미지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추가적인 시간과 연산 자원을 필요로 하며 이는 반응 시간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으로 보정하는 방식은 처리 시간이 길고 연산 자원을 많이 소모해 순간적 판단이 필요한 주행 상황에서 한계가 있다.
사람 눈은 이와 달리 반사적으로 동공이 먼저 수축·팽창하며 0.2~1.5초 안에 빛에 적응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연구들이 진행 중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빛 적응 문제를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 측면에서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센서 자체가 환경에 반응함으로써 연산 부하를 줄이고 반응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인공 망막을 인듐산화물(In₂O₃)과 Y6 유기 소재를 결합한 광검출기 64개를 반구형으로 배열해 구성했다. 평면형보다 시야각이 넓어 108도의 초광각 시야를 확보했다. 자외선부터 적외선까지 감지하며 빛 자극이 반복될수록 신호가 오래 유지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뇌의 학습 과정도 모방할 수 있다.
인듐산화물은 스마트폰 터치스크린 등에 쓰이며 전기가 잘 통하고 빛에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Y6는 탄소 기반 화학물질로 태양전지 등에 쓰인다. 빛을 넓은 파장대에서 잘 흡수한다.
연구팀은 시스템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손글씨 숫자 이미지(MNIST 데이터세트)에 과노출 효과를 인위적으로 추가한 뒤 인식 정확도를 비교했다. 동공 조절 없이는 68.4%였던 인식률이 인공 동공 적용 뒤 83.6%로 약 15%p 향상됐다. 자율주행 시뮬레이션에서도 역광 조건에서 차량 탐지 신뢰도가 뚜렷하게 높아졌다.
이 시스템의 또 다른 특징은 동공 형태를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점이다. 8개 채널을 독립 제어해 △세로형(고양이) △가로형(양·염소) 등 다양한 동물 동공 모양을 재현했다. 가로형 동공은 수평 시야가 넓어 포식자 탐지에 유리하다. 세로형은 목표물에 집중해 정밀한 사냥에 이점이 있다.
다만 이 인공 눈 시스템이 상용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전체 반응 시간은 0.5초로 실제 자율주행에서 요구되는 0.017초와는 큰 차이가 있다. 액체금속이 물리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다. 광검출기도 64개에 불과해 해상도 측면에서 실용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