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의 미국 톺아보기
관세 판결이 보여준 미 연방대법원의 복합적 풍경
2026년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 즉 IEEPA를 근거로 부과한 전면·차등관세는 법적 근거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겉으로 보면 보수 우위의 대법원이 대통령의 통상정책을 제한한 결정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판결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이번 판단은 보수 내부에서 오랫동안 축적돼 온 권한 해석의 차이가 표면 위로 드러난 사례에 가깝다. 그 균열은 각 대법관의 임명 배경과 경력, 수십 년간 형성된 법철학의 축적과 맞닿아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아홉 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종신직으로, 스스로 물러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임기가 끝나지 않는다. 지금의 아홉명 가운데 한명은 조지 H. W. 부시가, 두명은 조지 W. 부시가, 두 명은 오바마가, 세 명은 트럼프가, 한명은 바이든이 임명했다. 따라서 현재의 구성은 한 대통령의 정치적 산물이 아니다. 여러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이 겹쳐진 결과다.
트럼프 임명한 젊은 대법관들의 반대 이유
이번 판결의 다수의견을 작성한 이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다. 그는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다. 당시 50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대법관에 임명된 그는 이제 7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재임 기간만 20년을 넘겼다. 그는 이념적으로 보수 성향이 분명하지만 법원의 권위와 제도적 안정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제도주의적 보수로 분류된다.
2018년 트럼프가 연방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지칭하며 정치적 편향을 문제 삼았을 때 로버츠는 “미국에는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없다”라고 공개 반박하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모든 사안에서 행정부에 비판적인 인물은 아니다. 국가안보 등 행정부의 책임이 강조되는 영역에서는 그 재량을 인정했지만 대통령 개인의 형사 책임을 면책하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사안에서도 의회와 행정부 사이의 권한 배분이라는 헌법적 틀을 우선시했다. 관세를 단순한 통상수단이 아니라 조세에 해당하는 권한으로 보았고, 그 근거는 헌법상 의회의 명확한 위임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에서 다수의견에 합류한 닐 고서치는 트럼프가 2017년 임명한 대법관이다. 재임 9년 차에 접어든 그는 아직 50대 중반으로, 향후 수십 년간 대법원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의회가 광범위한 정책 결정을 행정부에 넘기는 관행에 구조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여러 판결에서 드러내 왔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트럼프에 의해 지명된 대법관이지만 의회의 명확한 위임을 거치지 않은 대통령 권한행사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의 판단은 권한행사의 법적근거를 엄격히 따지는 권력분립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IEEPA의 포괄적 문구만으로 전면적·무기한 관세권한을 넓게 인정하는 해석에는 거리를 두었다.
에이미 코니 배럿은 2020년 트럼프 임기 말에 임명된 비교적 젊은 대법관이다. 법조문의 문언과 구조를 중시하는 보수적 법철학자로 분류되지만 행정부 권한을 통제하는 방식에서는 닐 고서치와 결이 다르다. 이번 판단에서도 그는 결론에 동의했으나 “의회가 극도로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권한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식의 강한 기준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IEEPA의 문언과 구조를 종합적으로 읽어볼 때 전면적·무기한 관세까지 허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 무게를 두었다.
고서치가 권한 부여 문구가 분명해야 함을 강하게 요구하는 데 비해 배럿은 그 명확성의 기준을 보다 유연하게 접근하는 쪽에 가깝다. 젊고 장기 재임이 가능한 고서치와 배럿은 앞으로 외교·통상·비상권을 둘러싼 권한분쟁에서 판결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심인물들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소수 의견은 대통령 재량 넓게 인정
그러나 보수 6인 전체가 다수의견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브렛 캐버노는 반대의견에 섰다. 보수 내부에서도 강조점이 엇갈려온 세 사람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외교·통상 영역에서 대통령 재량을 더 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목소리를 냈다.
토머스는 1991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으로 현재 가장 오래 재임 중인 인물이다. 그는 헌법 조문의 본래 의미를 중시하는 보수적 법철학을 견지해왔으며 의회가 명확히 정하지 않은 권한을 행정부가 넓게 해석하는 데에는 일관되게 경계심을 보여왔다. 다만 외교와 국가안보 등 행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영역에서는 대통령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편이다. 관세권한을 둘러싼 이번 판단에서도 그는 외교·통상 분야에서는 대통령에게 더 넓은 정책 공간을 인정했다.
얼리토와 캐버노 역시 이번 사건에서 토머스와 같은 쪽에 섰다. 2006년 조지 W. 부시에 의해 임명된 얼리토는 사회·문화적 쟁점에서 강한 보수로 분류되지만 행정권 문제에서는 맥락을 구분한다. 코로나 시기 백신 의무화에는 반대했으나 외교·안보 영역에서는 대통령 재량을 폭넓게 인정해왔다. 이번 판단에서도 외교·통상 분야에서는 법원이 권한 범위를 세밀하게 제한하기보다 행정부의 판단에 일정한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인식에 가까웠다.
2018년 트럼프가 임명한 캐버노도 비슷한 지점에 서 있다. 그는 행정법에 정통한 인물로 국내 규제 사건에서는 행정부 권한을 좁게 해석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국제무역과 외교정책이라는 맥락에서는 의회가 일정 범위의 권한을 위임한 이상 법원이 그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세 사람은 행정부 권한 전반을 옹호한다기보다 외교·통상이라는 영역의 특수성을 이유로 대통령 재량을 넓게 보는 데 공통점을 보였다.
이념 대결 아닌 법리적 해석 차이가 작동
한편, 세 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은 모두 행정부의 관세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였다.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법원의 새로운 규칙 확장을 경계했고, 엘레나 케이건은 기존 해석도구로 충분하다고 보았으며, 커탄지 브라운 잭슨은 법을 만들 당시 어떤 취지와 목적이 있었는지를 더 깊이 살펴보았다.
소토마요르는 2009년 오바마가 임명한 대법관으로 행정부 권한이 과도하게 확장되는 상황에 꾸준히 경계심을 보여온 인물이다. 이번 판단에서도 관세권한을 인정하지 않는 결론은 같았지만 그 근거를 설명하는 방식에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법원이 새로운 해석 기준을 만들어 권한 문제를 일반 규칙처럼 굳히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하버드 로스쿨 학장과 법무차관을 지낸 케이건은 행정법과 입법과정에 밝은 인물이다. 그는 별도의 강한 원칙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법 조문의 문언과 맥락, 의회가 관세 권한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살펴보면 충분히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연방 공공변호인 출신인 브라운 잭슨은 행정권 확대에 대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인물이다. 그는 추상적인 원칙을 앞세우기보다는 의회가 실제로 어떤 의도를 갖고 권한을 위임했는지를 더 깊이 있게 살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
9인의 이력과 성향을 살펴보면 이번 판결은 단순한 이념대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은 6 대 3이었지만 법리적 지형은 최소 세갈래였다. 행정권을 통제하려는 보수, 외교 영역에서 대통령 재량을 넓게 인정하려는 보수, 행정부 권한을 제한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법원이 새 원칙을 만들어 권한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데는 거리를 둔 진보.
대법관은 종신직이다. 각 개인의 법철학은 수십 년 동안 대법원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지금의 대법원은 ‘보수 6인 vs. 진보 3인’으로 간단히 설명될 수 없다. 서로 다른 보수적 전통과 진보적 해석 방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에 가깝다. 관세권한을 둘러싼 이번 판단은 그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