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답정너’ 대화 넘어 ‘노사자치’ 시대로

2026-02-24 13:00:05 게재

대한민국 노동시장은 ‘이중구조의 고착화’와 ‘인구절벽’, 그리고 ‘인공지능(AI) 전환’이라는 거대한 복합위기 앞에 서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간극은 단순한 격차를 넘어 사회적 단절로 치닫고 있다. 이 같은 전환기적 복합위기를 돌파하려면 새로운 노동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실타래를 풀 열쇠가 ‘사회적 대화’라는 데 이견은 없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는 신뢰보다 냉소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라는 틀은 존재했지만 그 안에서 도출된 ‘합의’가 현장의 갈등을 치유하거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동력이 된 경우는 드물었다.

왜 우리의 사회적 대화는 매번 헛바퀴를 돌았을까. 그 본질을 파악하려면 지난 정부들이 남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식 대화의 유산과 노사 양측의 ‘정치의존증’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선행돼야 한다.

정권 전유물이 된 사회적 대화, 노사의 정치의존증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시작된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정부 성격에 따라 ‘답정너’ ‘편향성’ 시비에 시달려왔다. 게다가 대화의 한 축이어야 할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정리해고제 도입 등에 반발해 탈퇴한 뒤 지금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그간의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이 대등하게 머리를 맞대는 ‘자치의 장’이라기보다, 정부 성격에 따라 정해 놓은 정책 답안지에 노사의 도장을 찍는 ‘정당화 절차’에 가까웠다.

문재인정부는 ‘노동존중사회’라는 기치 아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굵직한 과제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사노위는 정책 추진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속도와 방향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이뤄진 대화는 자발적 양보가 아닌 ‘로비전’으로 변질됐다.

윤석열정부 역시 다른 방향에서 같은 오류를 반복했다. ‘노사 법치주의’를 앞세워 기득권 노조의 불법행위를 엄단하는 데 집중했지만,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같은 민감한 현안에서는 사회적 대화 기구를 정책 실패의 우회로나 알리바이로 활용했다. 행정명령과 지침 중심의 규율은 현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결국 한국노총의 대화 중단 선언이라는 파행으로 이어졌다. 두 정부 모두 이념은 달랐지만 사회적 대화를 정부 정책의 ‘거듭나기 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노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스스로 비용을 분담하는 타협안을 만들기보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정부에 기대 ‘청원입법’을 관철하려는 ‘정치’에 매달려 왔다. 갈등이 생기면 현장에서 해결하기보다 대통령실로 달려가거나 법원으로 향하는 ‘노동의 정치화·사법화’가 반복됐다. 말하자면 중증 정치의존증 환자였던 셈이다. 이것이 지난 수십 년간 사회적 대화를 발전시키지 못한 근본원인이다.

이제 이재명정부의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 2.0’의 닻을 올렸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기용은 상징성이 크고 대통령의 대화 의지도 분명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싸워도 대화해야 한다”며 노동 존중과 기업 경쟁력을 함께 추구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인사나 메시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대화의 ‘문법’을 바꾸는 일이다. ‘사회적 대화 2.0’이 성공하려면 ‘노사자치 선언’부터 이뤄져야 한다.

‘사회적 대화’ 문법부터 바꿔야 노동의 미래 열려

정부는 더 이상 사회적 대화 기구를 정책 실현의 알리바이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불개입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망만 제공하고, 그 결과가 정부 공약과 배치되더라도 존중하는 ‘인내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노사 역시 ‘정부 찬스’에 기대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계는 10% 조직 노동자를 넘어 90%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양보를, 경영계는 하청·중소기업과 상생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정치에 기대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우리 노동시장에는 패자만 남을 뿐이다.

주 4.5일제가 노동자의 건강권과 기업 생산성 사이의 접점을 찾고,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와 충돌하지 않는 세대 상생 모델로 자리 잡으려면 정부의 결단보다 노사의 ‘정직한 양보’가 훨씬 중요하다. 정치가 노동을 삼키고 법이 현장을 지배하는 악순환을 끊는 것, 그것이 우리 노동의 미래이자 ‘사회적 대화 2.0’의 본질이다.

한남진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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