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강한 안보, 긴장 낮추고 위기관리 능력 키운다

2026-02-24 13:00:02 게재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8.15 경축사와 2026년 신년기자회견 등을 통해 여러차례 ‘9.19 군사합의’의 조기 복원을 제시했다. 이전 정부가 국방부 대북정책 부서를 해체하고, 평화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면서 남북긴장을 증폭시켰다면 현 정부는 평화적인 대화의 장을 열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일부 강경한 안보담론을 보면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지적장애가 있으면서 필자보다 덩치가 큰 또래의 아이를 보면 놀라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오늘날 안보논쟁에서도 과거 기억처럼 과거에 얽매거나 현재 조건을 외면하는 태도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9.19 군사합의의 핵심은 군사분계선 일대 적대행위 중지, 감시초소(GP) 철수, 완충구역 설정,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신뢰 구축이다. 이를 ‘무장해제’로 규정하는 주장이 있었다. 무장해제란 한쪽은 무장을 유지한 채 다른 한쪽만 무장을 해제하는 구한말의 군대해산 같은 상황이다.

군사합의는 그런 일방적 조치가 아니다. 서로 총구를 겨눈 채 긴장감을 높이는 대신 일정한 통제장치를 두어 충돌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다. 대비 태세를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발적 충돌을 예방함으로써 안보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군사합의, 안보의 안정성 높이는 방식

그럼에도 군사합의 당시 합참 정문 앞에서 예비역 장성이 감시초소(GP) 철수에 반대하는 장면이 있었다. 남북 안보 근간이 정전 체제에 있고 비무장지대는 정전협정 핵심 내용이다. 비무장지대 복원에 대한 반대는 정전협정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초소 운용은 전·평시 상황에 따라 운용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북한초소는 이탈 주민을 막는 역할도 하고 있다. 감시와 경계는 고정시설에만 의존하지 않고 과학화·무인화 감시장비, 정보자산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보완이 가능하다. 과거 방식만을 절대화하는 것은 현대 군사 환경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훈련 역시 마찬가지다. 훈련의 목적이 무력시위가 아니라 억제력 유지와 대비 태세 점검이라면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에서 실시하는 것이 군사적 상식에 부합한다. 함대급 기동 훈련이나 연대급 훈련을 후방 지역에서 실시한다고 해서 대비태세가 약화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어떤 언론은 서북 도서 해병대 병력의 이동 비용을 문제삼았다. 해병대는 본질적으로 기동성을 갖춘 상륙작전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력 이동을 단순한 비용문제로만 해석하는 것은 군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시각일 수 있다.

냉전 시기, 유럽에서도 군사적 대결 속에서 신뢰를 축적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군비통제 협정은 헬싱키 최종합의서(1975), 스톡홀름 협약(1986), 비엔나 협약(1992)으로 발전했다. 대규모 군사훈련 통보, 참관, 병력 이동 제한 등 점진적 신뢰구축 장치를 마련했다. 군비통제는 상대를 믿어서가 아니라, 충돌을 통제하기 위해 제도화한 장치였다.

물론 국제사회에서 모든 협정이 순탄하게 유지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오랜 갈등의 누적 속에서도 평화협정을 유지해왔다. 나아가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홍해 평화공원 공동관리를 통해 환경보호와 지역 지역발전 문제에도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군사적 대치상황에서도 관리 할 수 있는 평화체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9.19 군사합의는 성숙한 안보의 길

변화는 한번의 결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은 조정과 제도적 관리가 쌓이면서 구조적 안정으로 이어진다. 9.19 군사합의도 마찬가지다. 정전협정과 달리 남북이 직접 당사자로 합의한 장치다. 일부 조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합의 틀 자체를 부정하면 안된다. 합의는 유불리를 따지는 계산서가 아니라 위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선이다.

강한 안보란 강경한 수사나 보복의지 과시가 아니다. 위기를 조기에 통제하고,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며, 필요할 때는 대화의 공간을 열어둘 수 있는 능력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키우지 않는 것, 그것이 성숙한 안보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노력은 안보 약화가 아니라 강화다.

이병록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