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저축은행 ‘직접 투자한도’ 2배로…당국 ‘생산적 금융’ 유도
자산 5조원 이상 5개사, 주식 투자 확대할 듯 … 펀드 투자한도도 완화
중견기업 대출 허용, 광고 규제도 풀어 … 대형사 중심 자본규제는 강화
대형·중형·소형에 따른 ‘규제 차등화’ 상징성 커 … 업계 “건의 대폭 반영”
자산 5조원 이상 대형 저축은행들이 개별 주식과 회사채 등 직접 투자 상품을 보유할 수 있는 한도가 지금보다 2배 늘어난다. 간접 투자 상품인 집합투자증권(펀드 등) 보유 한도도 2배 증가하는 등 투자 규제가 크게 완화된다.
금융당국이 금융의 역할을 실물경제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생산적금융’의 정책 방향과 대형 저축은행들이 그동안 요구해온 투자 규제 완화라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이억원 금융위원장 주재로 열린 저축은행 CEO 정책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저축은행 건전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이번에 완화된 유가증권 보유 한도 규제는 현재 자기자본의 50% 이내로 제한돼 있는 주식 보유 한도를 자기자본의 100%까지, 비상장 주식과 회사채(합계) 보유한도는 자기자본의 10%에서 20%로 늘리는 내용이다. 집합투자증권의 보유한도 역시 현행 자기자본의 20%에서 40%로 확대된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은 예대율 규제로 자기자본의 상당액을 유가증권으로 운용해야 하나, 타 업권 대비 엄격한 유가증권 보유한도를 적용해왔다”며 “혁신·중소기업 등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에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 저축은행은 유가증권 종류별로 한도를 제한하고 있지만 은행은 종류에 상관없이 자기자본 100% 이내로 허용하고 있다. 금융투자회사와 여신전문금융회사는 관련 규제가 없다.
지난해 6월말 기준 자산 5조원 이상 저축은행은 SBI(14조2000억원)·OK(13조2000억원)·한국투자(8조5000억원)·웰컴(6조원)·애큐온(5조3000억원) 등 5곳이다. 제주은행의 자산이 7조60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미 소형 지방은행 수준의 규모다.
OK저축은행은 자기자본 1조8000억원 중 주식 투자 한도인 50%를 거의 채워서 투자를 해왔다. 지난해에는 유가증권 투자로만 1000억원 넘게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으로 신규 대출 영업이 어려워졌고 부동산 투자도 사실상 막혀 있어서 올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투자 규제 한도가 풀려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대형사들이 독자적으로 체크카드와 선불(모바일 쿠폰 등)전자지급수단의 발행과 관리, 대금의 결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대형사라도 최근 2개년도 연속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3% 이상이고 최근 2년간 경고 이상의 조치를 받은 사실이 없을 것을 충족시 허용된다. 현재는 저축은행중앙회와 업무를 공동으로 하는 경우에만 취급이 가능하다.
저축은행 업권 전체로는 중견기업에 대한 대출이 허용된다. 현재 상호저축은행법은 저축은행 설립 목적을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편의 도모로 정의하고, 영업 구역 내 개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여신 비율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그간 경제규모 성장, 대형 저축은행 등장 등을 감안해 영업구역 내 여신 비율 산정시 중견기업을 포함시키기로 했다”며 “법목적상 영업대상도 중견기업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이번 방안에서 포함된 중요한 핵심 대책 중 하나로 자산 규모에 따른 차등화를 꼽고 있다.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의 자산규모별로 지향점을 달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자산규모 14조원인 저축은행과 30억원인 저축은행이 같은 규제를 받는 다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안됐다”며 “저축은행을 차등화해서 관리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79개 저축은행을 3단계로 분류하기로 했다. 복수 영업구역을 갖춘 자산 5조원 이상 대형사는 전국 단위 서민금융기관으로, 자산1조~5조원인 26개사는 광역시·도 단위 지역·서민금융기관으로, 자산 1조원 미만인 48개사는 거점도시 단위 지역·서민금융기관으로 나눴다.
중·대형사에 대해서는 개별차주 신용공여 한도를 상향하고 소형사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중·대형사는 법인 대출의 경우 현행 120억원에서 수도권은 140억원, 비수도권은 150억원으로 한도를 상향하기로 했다. 개인사업자대출의 경우 현행 60억원에서 수도권은 70억원, 비수도권은 75억원으로 늘린다.
막혀 있던 방송 광고 규제도 풀어주기로 했다. 현재 저축은행 광고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시청할 수 있는 시간대에 금지돼 있다. 2015년부터 관련 규제를 도입해 운영해왔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중앙회에서 해당 시간대 광고의 적합성 여부에 대한 심의를 강화하는 대신에 종전 금지 시간대의 방송광고를 허용하기로 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이번 규제완화와 관련해 “건의 사항이 대폭 반영됐다”는 분위기다.
다만 금융당국은 대형사에 대한 자본규제는 은행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대형사에 대해서는 자본규제를 은행 수준으로 고도화해, 보유 자산의 위험 수준이 자본에 충실히 반영되도록 하고 위기 발생 이전 단계에서도 선제적인 자본확충, 배당 제한 등 체계적 건전성 관리를 위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형사에 대해 은행 수준의 BIS비율 산정방식을 선별적·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적기시정조치 부과 전이라도 경영 건전성 저해 우려시, 자본금 증액, 배당 제한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법상 근거 마련하기로 했다. 또 기업여신의 신용위험을 실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미래 채무상환능력(FLC) 자산건전성 분류 기준을 도입할 예정이다.
자산규모에 따라 대주주의 소유 지분을 단계적으로 제한하는 방안도 도입할 예정이다. 자산규모가 20조원 이상이면 동일인 주식보유한도를 50%로 제한하고, 30조원 이상이면 34%(인터넷은행 지분 상한 한도), 40조원 이상이면 15%(지방은행 지분 상한)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금융당국은 “은행 수준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저축은행은 선제적으로 건전하고 투명한 소유·지배구조를 구축하도록 관련 규제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