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통합 이후 과제 ‘내용 채우기’ 경쟁 시작
20조원 활용 등 의제 부상
지역별 후속 논의 본격화
전남광주·충남대전·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행정통합 논의의 초점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통합 찬반을 둘러싼 공방을 넘어 통합 이후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둘러싼 후속 과제가 전면에 등장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약속한 20조원 규모 재정 지원 활용 방식, 통합 지방정부에 맞는 정치개혁, 돌봄 등 생활서비스 혁신 방안까지 논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행정통합 논의가 ‘출범 이후 설계’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남광주 “20조 재정, 주민이 설계해야” = 통합 이후 의제 논의를 가장 먼저 구체화한 곳은 전남광주다. 강위원 전남도 경제부지사는 최근 정부가 약속한 향후 4년간 20조원 규모 재정 지원을 단순한 예산이 아닌 지역 공동체가 직접 설계해야 할 자원으로 규정하고 ‘20조 공동체 포럼’을 제안했다.
강 부지사는 “재정과 권한이 일부 권력에 집중돼서는 안 된다”며 “시민 참여형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부지사는 기존 사회간접자본(SOC) 중심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재정을 산업 생태계 전환, 지역경제 활성화, 주민 삶의 질 개선 등 구조 전환에 활용해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제시했다. 행정통합을 단순한 행정구역 변경이 아니라 지역 운영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미애 “통합만으론 부족, 정치개혁 시급” = 통합 이후 정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행정통합특별법 통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통합 이후 균형발전 계획과 함께 정치개혁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의원은 특히 통합지방정부 출범 이후 기존 의회 구성 방식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대표성과 견제 기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별 인구 편차에 따른 표의 등가성 논란과 정치 다양성 약화 가능성을 우려하며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행정통합이 단순한 행정 재편이 아니라 지역 정치 구조 재설계로 이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돌봄·생활서비스까지 의제 확장 = 통합 이후 과제를 둘러싼 논의는 주민 삶과 직접 맞닿은 분야로도 확장되는 모습이다.
최근 조국혁신당에 입당한 김동석 전 토닥토닥 이사장은 행정통합 이후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통합돌봄 체계 구축 가능성을 언급하며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대전충남 지역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먼저 자리 잡았던 경험처럼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수준을 넘어 통합지방정부가 스스로 돌봄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행정통합은 행정구역을 합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이후 어떤 내용을 채워 넣느냐가 핵심”이라며 “재정 운영 방식, 정치 구조, 주민 참여 모델 등 통합 이후 의제를 둘러싼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 대해 "행정통합 논의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선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통합특별시가 단순한 행정 실험에 머물지 않고 지역발전의 실질적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지금부터 시작된 ‘통합 이후 설계’ 논의가 얼마나 구체적인 대안으로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