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42 | 손죽도 둘레길
집집마다 나무·꽃 가꾸는 정원같은 섬
21살 청년 장군이 목숨 바쳐 지켜낸 섬.
전남 여수의 손죽도는 이대원 장군(1566-1587)이 목숨을 걸고 싸워 지켜낸 섬이다. 섬 주민들은 지금도 장군을 섬의 수호신으로 모신다.
이대원 장군은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18살에 무과에 급제했다. 1586년 21살 약관의 나이에 흥양(고흥)의 녹도만호(종4품)가 됐다. 녹도는 지금의 녹동항이다.
장군은 1587년 2월 녹도 앞바다에 왜구가 출몰하자 전함을 이끌고 출전해 왜구들을 섬멸했다. 장군은 이 전투에서 적장을 생포해 전라좌수사 심암에게 넘겼다.
수사는 공을 자신의 것으로 하자 했으나 장군은 이를 거절했다. 왜구 토벌의 공을 가로채려다 실패한 수사는 장군에게 깊은 원한을 품었다.
2월 17일, 대규모 왜구들이 다시 손죽도를 침략했다. 수사는 수적 열세를 알고도 단지 100여명의 병사만을 내주며 장군의 출병을 재촉했다. 장군은 이미 날이 저물고 군사도 적은데 덮어놓고 출정하는 것은 무모하니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군사를 더 모아 출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간언했다.
하지만 심암은 장군을 강제로 출병시켰다. 장군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작정한 행위였다.
장군은 출병하며 수사가 군사를 이끌고 뒤따라 와 줄 것을 요청했다. 수사는 출병하지 않았고 장군과 병사들은 3일 밤낮을 격렬히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다시 병력 지원을 요청했으나 끝내 수사는 지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장군은 혈서로 ‘절명시’를 쓴 뒤 왜구에게 사로잡혔다. 왜구는 장군의 항복을 받아내려 했으나 거절당하자 돛대에 매달아 찔러 죽였다. 약관 21세의 청년 장수가 질투에 눈이 먼 직속 상관의 계략에 희생된 것이다.
장군의 억울한 죽음은 덮힐 뻔했으나 전투에서 살아남은 장군의 부하 손대남이 돌아가 진상이 밝혀졌다. 1587년 선조는 심암을 참수하라는 어명을 내렸고 한양의 당고개에서 목 이 떨어졌다. 사건의 전말은 화곡 정기명이 지은 ‘녹도가’에 전해진다.
손죽도 사람들은 사당을 세워 이대원 장군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지금도 해마다 제사를 올린다.
손죽도는 여수 최남단의 섬 거문도로 가는 길목에 있다. 집집마다 나무나 꽃을 가꾸는 아름다운 정원 섬이다.
손죽도는 언어의 보고이기도 하다. 제주년 배 떨어진디, 독 보듬고 돈디, 손잡고 돈디, 처녀 베 짠디, 지지미, 날나리 같은 지명들이 여전히 쓰인다.
‘독 보듬고 돈디’는 암벽 해안에서 돌을 보듬고 돌아야만 지날 수 있는 험한 곳의 지명이고, ‘손잡고 돈디’는 비탈진 암벽에서 누군가 손을 잡아 주어야만 건널 수 있는 곳이다. ‘처녀 베 짠디’는 처녀들이 모여서 베를 짜던 곳이고, ‘지지미’는 섬사람들이 봄이면 몇날 며칠씩 진달래 화전도 지져먹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놀던 곳이다.
‘날나리’는 험한 길이 계속되다 걷기 좋은 평지가 나타나자 날아갈 듯 좋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제주년 배 떨어진디’는 물질 왔던 제주 해녀가 물질하러 배에서 떨어지던 곳이다.
손죽도에는 백섬백길 24코스 손죽도 둘레길이 있다. 손죽도항에서 시작돼 봉화산, 깃대봉을 거쳐 삼각산까지 이어지는 4.4㎞의 길이다.
길게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면 막힌 데 없이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가 장관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보물같은 섬길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