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획량 중심 수산자원관리법 제정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115년전 일제총독부 어업령 바탕 둔 1529개 규제로 어업인 포위
21대 국회에서 제정 실패 … 22대 국회도 정쟁에 표류될까 우려
115년 전인 1911년 일제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어업령’에 뿌리를 둔 어업관리 체계를 전환하는 일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어업인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529건의 어업 규제를 없애고 어업인에게 할당된 어획량을 중심으로 어업관리를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됐다.
김영철 전국어민회총연맹 집행위원장은 26일 내일신문에 “1500건 이상의 규제가 살아있는 한 어업인은 언제라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며 “어획량 중심으로 수산자원을 관리하고 어업인을 옭아맸던 어업규제를 다 없애겠다는 법안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해양수산부도 이날 △해수온 상승 △수산자원 감소 등연근해어업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5년간수산자원 관리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제4차 수산자원관리기본계획’(2026~2030년)을 수립·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에 앞서 2024년 6월 △어업규제 혁신 △기후변화 대응 △국제규범 대응 등을 위한 ‘지속가능한 연근해어업 발전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법안은 해수부가 전국 17개 시·도를 권역별로 나눠 어업인, 협회·단체,지자체 등 이해관계자들 의견을 수렴한 내용으로 2023년 12월 21대 국회에 제출됐지만 21대 국회 만료(2024년 5월)와 함께 자동폐기돼 22대 국회 개원에 맞춰 다시 제출된 것이다.
◆자원관리 전환위해 어선·해역별 어획데이터 필수 = 해수부는 21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기 전 2023년 9월 국제 수준의 어업관리를 통해 우리 어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어업 선진화 추진방안’을 수립하고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했다.
어업 생산성 하락, 자원남획, 국제사회의 규범과 제재 등으로 현장과 전문가들 속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어업제도 변화에 대한 요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분위기가 담겼다.
당시 해수부는 “어업인의 편의와 조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복잡하고 다양한 1500여건의 규제는 2027년까지 절반 가까이 폐지하고 대신 어획량(TAC) 중심의 어업관리 기반을 구축해 2027년까지 모든 어선에 대해 총허용어획량(TAC)을 전면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국제어업관리방식에 맞춘 관리·감독(모니터링) 체계도 구축하겠다며 ‘어획증명제도’를 도입해 국내외 불법 수산물 유입을 차단하고 소비자가 수산물의 생산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수산물을 안심하고 소비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2대 국회에 ‘지속가능한 연근해어업 발전법’을 제출하면서 어업규제 혁신, 기후변화 대응, 국제규범 대응을 다시 강조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우리 어업은 115년 전 제정된 어업법을 바탕으로 물고기를 잡는 어구어법제한, 금어기·금지체장 등 41개 어업종류당 평균 37건에 이르는 1529건의 규제에도 생산성이 하락하고 현장 어업인 불편과 갈등은 증가하고 있다.
해수부는 투입규제를 폐지·조정하고 어획량을 기반으로 한 산출량 중심의 어업관리로 전환하기 위해 조업 어선과 해역별 어획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산자원 변동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기후변화 대응 수산업을 위해 필수조건이다.
한국수산자원공단에 따르면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한 자원관리 방법으로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30여개국에 이르는 수산업 선진국에서 대부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9년 4개 어종으로 시작해 현재 15개어종 17개 업종을 대상으로 확대해 전체 어회량의 40%를 TAC로 관리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어업인들은 조업 중 어선의 위치를 자동으로 발신하는 장치를 작동하고 조업하는 날마다 어획량이나 다른 어선으로 옮겨 싣는 것(전재)을 보고해야 한다.
정부는 어획과정(투입)에 초점을 맞춘 1500여가지 규제를 없애는 대신 어획량을 중심으로 한 규제를 시행하기 위해 단속도 잡은 물고기를 양륙(육지에 내림)하는 곳에서 시행한다. 이를 위해 수산자원양륙장소를 지정하고 지정양륙항이 아닌 곳에서 양륙을 금지한다.
김영철 집행위원장은 “공무원들이 바다에서 단속 안 해도 양륙항에 감독관을 배치하고, 보고하지 않은 어획물을 개인거래하는 것을 감시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어업현장의 의견을 반영해 전국에 305개소의 양륙항을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바다에 접한 전국 연안 시·군·구 73곳을 감안하면 기초자치단체 한 곳당 평균 4곳 이상의 지정 양륙항을 배치하는 셈이다. 수협도 전국 207개 위판장을 모두 양륙항으로 지정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법안에 담긴 어획증명제는 수산물을 수출할 때 어획확인서를 첨부토록 하고 수입할 때도 해당 국가 정부기관의 어획증명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서진희 해수부 어업정책과장은 “어업확인서 어획증명서 양륙항검색 등 법안이 규정하고 있는 어획데이터확보 및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면 총허용어획량, 어선감척을 통한 어업구조조정, 어업손실보상, 해상풍력입지 등에도 어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책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고 기대했다.
◆20톤 이상 어선부터 전자어획보고 의무화 추진 = 국회도 지난해 12월 16일 ‘지속가능한 연근해어업 발전법’에 대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공청회를 열고 일부 내용을 보완해 수산자원 관리체계 전환을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공청회를 진행한 조경태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원장(국민의힘. 부산 사하구을)은 “전반적으로 법안의 취지와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고, 세부 보완사항을 점검하는 건설적인 논의의 자리였다”며 “‘규제 법안’이 아니라 ‘전환을 지원하는 법안’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법안은 국회 통과 후 1년 뒤에 시행하게 돼 있다.
공청회 이후 법안 통과를 위한 국회의 노력은 계속됐다.
농해수위 소속 윤준병(더불어민주당. 전북 정읍시고창군) 의원은 지난 10일 공청회에서 제기된 어업인들 의견을 반영한 ‘지속가능한 연근해어업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해 정부가 발의한 법안에 담긴 ‘어획실적 및 전재실적 등에 관한 적용’ 대상에서 총톤수 2톤 미만의 어선의 경우 법안 공포 후 2년이 경과한 날부터 적용한다는 부칙을 포함해 1년 추가 유예 기간을 뒀다.
김기성 수협중앙회대표는 “불법·비보고·비규제(IUU) 어업을 없애고 예방하겠다는 연근해어업발전법 취지에 공감하지만 어획량이 소량이고, 현실적으로 어획·양륙보고가 어려운 2톤 규모 미만의 소규모 1인 어선에 대해서는 어획·양륙실적 보고의무를 몇 년간 유예해서 적용하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공청회 등을 통해 건의했고, 특별법안 내용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수협에 따르면 2톤 미만 어선의 생산량은 연근해 어업 생산량의 6.5% 수준이다.
하지만 법안은 지방선거가 있는 6월 이전에 통과를 희망하는 정부와 어업인 바람과는 달리 국회에서 여·야 대치국면이 계속되면서 다시 표류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도훈 부경대 교수는 “법안 통과 후 1년 뒤에 시행하게 돼 있어 이번에 통과해도 2027년에 시행하게 되는데 이번에 안되면 2028년 이후로 연근해어업 체계 개편이 또 연기되고, 국제기구나 무역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며 “국회 법안소위가 또 미뤄졌는데 법안 통과를 더 이상 미루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올해부터 5년간 적용하는 ‘제4차수산자원관리기본계획’은 기후변화에 대응한 적정 어획량 관리와 수산자원 회복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TAC 기반의 수산자원 관리체계를 확대하기로 했다.
중점 추진과제는 △기후변화에 따른 수산자원관리 체계 고도화 △생태계 기반 수산자원회복 통합전략 수립 △책임있는 어업 참여와 자발적 수산자원관리 강화 등이다.
‘지속가능한 연근해어업 발전법’ 제정에 맞춰 TAC 적용 대상이 대부분 어선어업 업종과 어종으로 확대되는 것에 따라 양도성 개별할당제(ITQ) 시범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ITQ는 정부가 어종별 총허용어획량을 정한 뒤 해당 물량을 분배하고, 어업인들이 배분받은 할당량을 조업 실적이나 여건에 따라 서로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한국형 어획증명제를 확산하고 20톤 이상 규모 연근해 어선부터 단계적으로 전자어획보고 의무화도 추진한다.
또, 버려지는 수산물인 부수어획에 대한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신뢰도 높은 보고체계를 확립하기로 했다.
김성범 해수부장관 직무대행은 “제4차 기본계획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인공지능에 기반한 과학적인 자원관리 정책으로 전환하고, 현장 수용성을 반영한 정부와 지방정부의 수산자원관리 역할강화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