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은 장바구니 물가 뒤에 ‘가격 왜곡’

2026-03-03 13:00:01 게재

경찰, 민생물가 교란 8개월 단속 … 매점매석·집값·암표 등 9개 유형 집중 단속

치솟은 장바구니 물가는 원자재 가격이 내려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집값은 불안하고, 공연·스포츠 경기 티켓은 정가보다 비싸게 되팔린다. 특정 가격 이하로는 매물을 내놓지 못하게 유도하는 집값 담합 의혹,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암표 거래, 공급을 묶어 가격 상승 기대를 키우는 매점매석까지. 가격이 오르는 이유가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왜곡’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에 대응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3일부터 10월 31일까지 8개월간 ‘민생물가 교란 범죄’ 특별단속에 착수했다. 정부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를 가동한 데 따른 범정부 대응의 수사 축이다.

단속 대상은 △매점매석·긴급수급조정조치 위반 등 물가안정 저해행위 △정책자금 제3자 부당 개입 △암표 매매 △의료·의약 분야 리베이트 △할당관세 편법 이용 △집값 담합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불공정행위 △학원법·방문판매법 위반, 임대료 인상 제한 회피, 관리비 초과분 부당 취득 등 9개 유형이다.

경찰 단속의 핵심은 ‘가격 형성 과정’이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기대와 정보에 따라 움직인다. 매점매석은 공급이 부족하다는 신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격 상승 기대를 키운다. 암표 매매는 정상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해 체감 가격을 높인다. 집값 담합은 실거래 신호를 왜곡해 시장의 기대가격을 끌어올린다. 정책자금 부당 개입은 공적 자금을 사적 이익으로 돌려 경쟁 질서를 흔든다.

이 구조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내려도 소비자가격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왜곡으로 생긴 이익은 일부에 집중되지만 부담은 넓게 퍼진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 상승이 단순한 비용 증가로만 설명되지 않는 이유다.

이번 단속은 최근 물가 안정을 국정 과제로 제시한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생활필수품 가격과 부동산 시장의 불공정 행위 점검을 지시하며 담합·폭리 행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주문해 왔다. 가격 수준뿐 아니라 가격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공정성을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실제 민생과 직결된 담합 의혹과 제재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 자재, 식품 원재료, 생활용품 유통 과정에서 가격을 사전에 조율하거나 납품 단가를 함께 올린 행위에 대해 제재 절차를 진행해 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특정 가격 이하 매물을 받지 않기로 합의하거나 허위 실거래 신고로 시세를 끌어올린 사례도 적발됐다.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 거래 역시 반복적으로 문제로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를 단순한 시장 자율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교란 행위로 보고 있다. 행정 TF가 점검을 맡고, 경찰이 수사와 집행을 담당하는 구조다. 특히 집값 담합, 정책자금 부당 개입, 암표 매매 등은 이 대통령이 밝힌 ‘무관용 원칙’ 적용 대상과 맞닿아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한 대형마트 밀가루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경찰은 수사국장을 팀장으로 전담 TF를 구성했다. 시·도청 수사 부서와 경찰서 지능팀을 중심으로 신속히 수사에 착수한다. 범죄수익은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고, 범죄 사실이 확인되면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왜곡을 통해 얻는 기대수익을 낮추지 못하면 단속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박성주 국가수사본부장은 “매점매석, 긴급수급조정조치 위반, 암표 매매 등은 서민 체감 경제를 악화시키는 범죄”라며 “수사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단속이 곧 체감 물가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다. 가격 왜곡은 사건이 아니라 관행으로 쌓여 왔다. 형사 집행이 시장에 ‘왜곡으로 얻는 이익보다 위험이 크다’는 신호를 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소비자에게 중요한 것은 단속 실적이 아니라 체감 결과다. 장바구니 가격과 주거 비용, 문화 소비 비용이 실제로 안정되는지가 이번 단속의 평가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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