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비용이 된 처벌, 반복되는 담합

2026-03-06 13:00:02 게재

국제 원당·원맥가격 하락에 따른 사회적 압박에도 꿈쩍않던 설탕과 밀가루 가격이 갑자기 내려갔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논리가 작동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수사와 제재가 본격화되자 기업들이 가격표를 고쳐 붙였다. 원가가 아니라 사법 리스크에 반응한 것이다.

검찰이 밝힌 담합 규모는 9조9409억원이다. 주요 제분사들이 가격인상폭을 사전에 조율하고 이를 업계에 전달한 정황도 드러났다. 밀가루 가격은 최고 42.4%, 설탕은 66.7%까지 올랐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는 빵과 과자, 외식물가로 이어지는 생활물가의 출발점이 왜곡됐음을 보여준다.

문제의 핵심은 반복이다. 제분업체는 두 번째, 설탕업체는 세 번째 적발됐다. 한 차례 제재로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적발에 따른 손해보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크다는 계산이 작동해왔다는 뜻이다.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허 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담합 관련 누적 매출액은 91조6398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과징금은 2조2764억원, 매출 대비 2.5%에 그쳤다. 제재라기보다 리스크 관리 비용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처벌 체계도 가볍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담합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이다. 미국은 개인에게 최대 10년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고, 유럽연합(EU)은 전세계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 담합을 중대범죄로 취급하는 해외와 대비된다.

수사 과정에서 “벌금으로 끝난다”는 인식이 확인됐다는 점은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처벌이 두렵지 않다면 담합은 범죄가 아니라 계산 가능한 선택이 된다. 국내에도 3배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됐지만 상한에 근접한 판결은 드물다. 피해는 넓고 책임은 제한적이다. 제재가 이익을 압도하지 못하는 한 반복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가격이 수사와 권력의 신호에 반응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경쟁이 아니라 외부 압력에 의해 조정되는 시장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시적 경고로 움직이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근 경찰도 대대적인 담합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강한 한번’이 아니라 ‘늘 작동하는 제도’다. 상시 가격 모니터링, 담합 징후 자동조사, 반복 가담 기업에 대한 누진 제재, 임원 개인 책임의 실질화, 부당이익 전면 환수 장치가 제도화돼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계산식이 바뀐다.

가격 몇 % 인하로는 부족하다. 처벌이 비용이 아니라 존립 위험이 될 때에야 경쟁이 가격을 정한다. 그렇지 않다면 10조원 담합은 예외가 아니라 반복이다.

장세풍 기획특집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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