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었음’ 청년 독일사례

직무중심 대졸 채용, 고용률 90%·초임 6500만원

2026-03-06 13:00:03 게재

기업에선 고학력은 ‘높은 지식’ 아닌 ‘스스로 일할 수 있는 능력’ … 임금은 직무의 시장가치, 대학 재학 중 직무배우기 시작

한국에서 ‘쉬었음’ 청년이 급증하며 고학력자까지 노동시장 이탈이 확산되고 있다. 반면 독일 대졸자는 졸업 후 1~3년 내 취업률이 91~92%로 안정적이며 초임도 서유럽 평균을 웃돈다.

비결은 대학 재학 중 실습, 정식 입사 전 볼론타리아트(전문실무훈련)·트레이니(핵심인력훈련) 등 직무중심 훈련을 통해 노동시장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직무 기반 채용과 임금체계는 졸업 후 빠른 취업과 고용 질, 생산성을 동시에 높인다. 독일 사례를 통해 한국 청년정책과 노동시장 개선의 시사점을 살핀다.

세계 최대 화학기업인 독일의 BASF는 기업 커뮤니케이션 부서에서 볼론타리아트(전문실무) 훈련생을 모집하면서 흥미로운 경력을 쌓고 최적의 준비 과정을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BASF PR부서 볼론타리아트과정은 2년간 3개월마다 부서를 이동하며 직무를 배운다. 경험 있는 커뮤니케이터의 지도와 멘토링, 함부르크 출판아카데미에서 1개월 교육과정, 매력적인 급여와 추가 혜택이 제공된다. 볼론타리아트 훈련을 마치면 정규직 전환의 길이 열려있다. 출처: www.basf.com

‘쉬었음’ 상태에 놓인 청년층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그동안 주로 저학력 청년의 문제로 인식됐던 문제가 최근에는 대졸 이상 고학력자에게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20대 후반 대졸 남성에서 교육·고용·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청년(15~29세) 니트(NEET)의 비중이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럽 통계청 2023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 대졸자의 졸업 후 1~3년 이내 취업률은 최근 수년간 91~92%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대졸자의 임금 수준 역시 서유럽 평균보다 높다. 이처럼 높은 고용률과 안정적인 노동시장 진입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는 청년 개인의 역량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교육과 노동시장을 긴밀하게 연결해 온 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독일의 대학 과정에서 노동시장을 잇는 제도적 연결장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질적 실습증명서, 대졸 취업을 좌우 = 독일 교육체계에서는 학위를 취득한 뒤 노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학생이 교육과정에서 이미 학생이자 노동자로서 직업활동을 배우고 익힌다. 대학 전공 이론은 재학 중 직무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졸업 후 취업 공백이 길거나 전공과 직업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대졸 학력은 단순한 시험 성적이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학습을 조직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립성을 보여주는 신호다. 따라서 학력이 높다는 것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뿐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은 구직과정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의 직업계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독일 직업학교는 졸업장과 직업자격증 취득과정에서 이론·실습 내용, 교육과정 구성, 시험출제 방향까지 법과 시행령으로 정해져 있다. 학생은 법이 정한 과정을 이수하면 비교적 안정적으로 정규직 취업에 도달할 수 있다. 반면 대학은 법과 제도적 보호보다 학생 개인의 자발성과 책임성이 핵심이며 대학생은 스스로 진로를 탐색하고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실습(Praktikum, 인턴십)을 한다.

독일의 직원 선발과정은 지원자를 평가할 때 단순한 학력이나 성적보다 직무에 대한 관심, 문제의식, 직무 관련 경험을 중시한다. 이러한 경험은 실습증명서를 통해 확인된다. 실습증명서는 단순 실습증명서와 질적 실습증명서로 나뉜다. 전자는 실습기간과 담당 업무 확인에 그치지만, 후자는 실습내용뿐 아니라 이론의 현장 적용 능력, 업무수행 수준, 근무태도 평가 등을 포함한다. 질적 실습증명서는 졸업 후 정규직 채용과 경력 형성의 핵심 자료로 활용된다.

독일 대학생 상당수는 재학 중 커리큘럼에 포함된 실습이나 자발적 실습을 통해 직무경험을 쌓는다. 전공과 제도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연구중심 성격의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도 2021~2023년 졸업생 조사 기준 약 65.4%가 방학 중 의무적 또는 자발적 실습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보건의료계열이나 교대·사범대는 실습 없이는 자격 취득이나 취업이 불가능하거나 극도로 제한된다. 공학·이공계 실무중심 학과 역시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실습경험 없이는 채용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건축·도시·설계, 경영·경제학 분야도 전공지식만으로는 직무 자격이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관광·호텔·외식·항공서비스, 디자인·영상·콘텐츠·예술, 사회복지·상담·심리 분야 역시 실습경험 유무에 따라 취업 가능성과 초기 임금과 직무 수준에 차이가 발생한다. 법적 의무 여부와 관계없이 실습은 대졸자의 구직과정에서 사실상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독일 라디오방송국 볼론타리아트 교육과정은 라디오 진행자, DJ, 편집자 등으로서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경험 있는 언론인들과 밀접하게 협력하며 세미나에 참여하고 자신의 프로젝트를 개발한다. 목표는 라디오 저널리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실무에서 역량을 강화한다. 학력은 인문고 졸업 또는 전문대 졸업도 가능하나 학사 이상 학위 소지자를 우대한다. 이전 인턴십 또는 프리랜서 경험이 필수적이고 독일어 구사 능력(말하기·쓰기)이 매우 우수하고 오디오 및 편집 기술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하다. 출처: www.azubiyo.de

◆볼론타리아트와 트레이니, 대졸 전문직 진입 경로 = 졸업 이후 노동시장 진입 경로 역시 한국과 다르다. 독일에서는 졸업 직후 곧바로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 대졸자는 1~2년간 볼론타리아트(Volontariat)나 트레이니(Trainee) 과정을 거친다. 이는 대학 학력을 전제로 한 전문직 진입단계의 훈련이다.

볼론타리아트는 언론·미디어, 공공 커뮤니케이션·PR·홍보, 문화·예술·박물관·전시, 출판·편집, 공공·준공공 전문직 분야에서 사실상의 표준 경로로 자리 잡았다. 해당 분야에서는 이를 대체할 공식적인 신입 채용 제도가 매우 제한적이다.

트레이니 과정은 대기업의 관리·기획·경영 직무, 금융·컨설팅·전문 서비스, 엔지니어링·산업기술, 공공·준공공 전문직, 법률·규제 전문직, 글로벌 업무 분야 등에서 필수적이다. 학위만으로는 직무수행이 어렵거나 조직·규범·책임에 대한 체계적 학습이 필요한 관리직·전문직 진입을 위한 훈련과정이다. 볼론타리아트나 트레이니 참가자는 실제 업무와 프로젝트에 책임을 지며 직무 전반을 익힌다. 평가는 단순 근태가 아니라 성과와 문제해결 능력, 조직 적응력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과정을 운영하지 않는 기업도 신입사원이나 채용 후보자를 대상으로 ‘직무 적응과 숙련 훈련’을 실시한다. 이는 수주에서 수개월간 진행되는 현장중심 OJT(직장내 훈련)로, 멘토 배정, 단계적 업무수행, 안전·조직문화 교육, 필요 시 외부 단기훈련을 결합한 방식이다. 이 훈련은 대졸자의 직무 적응과 직장 사회화를 지원하며 고용유지와 근속률 제고에 기여한다.

직무중심 채용구조는 임금수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독일에서 대졸 초임은 해당 직무의 자격·숙련·책임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직무가격’으로 정해진다. 채용 이전에 직무기술서와 임금수준이 이미 확정되며 직무기술서에는 직무 목적과 핵심 역할, 주요 업무와 책임 범위, 권한과 의사결정 범위, 요구 역량과 자격, 보고체계, 근무조건 등이 명시된다.

초임은 조직 내 서열의 출발점이 아니라 직무가치를 반영한다. 우리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23년 한국 대졸 정규직 신입사원의 평균 초임은 약 3700만원이다. 같은 해 독일 대졸 초임은 연 4만5000유로(약 6500만원) 수준이다. 구매력 기준(PPP)으로 환산한 독일의 직무중심 임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권에 속한다.

독일의 직무위주 대졸 채용 문화는 졸업 이후 빠른 노동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하고 직무에 상응하는 임금으로 고용의 질과 생산성을 동시에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