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안보 강화, 장주기ESS<에너지저장장치> 전략자산으로”
비리튬계 업계 “향후 2~3년 변곡점, 전용 입찰 트랙 필요” … 기후부 “유연성 경제로 전환 가속화”
“2010년대 인산철(LFP) 배터리에 집중 투자해 세계 시장을 장악한 중국과 달리 대한민국은 기회를 놓쳤다. 최근 흐름전지(플로 배터리) 업계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정부가 제때 지원을 해줘야 한다.”
9일 충남 계룡시 H2 사업장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비리튬계 에너지저장장치 간담회에서 플로 배터리 업체 A 대표는 “향후 2~3년이 플로 배터리 업계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중국 등 해외에 또다시 시장을 뺏길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리튬 외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 기술 육성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23GW 규모의 플로 배터리 설치를 추진 중이다.
플로 배터리는 에너지를 탱크 속 액체(전해액)에 저장했다가 펌프로 순환시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의 배터리다.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 쓰는 리튬 배터리와는 구조가 다르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리튬 배터리가 건전지라면 플로 배터리는 발전소처럼 액체 연료를 흘려보내며 전기를 만드는 것에 가깝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비리튬계 에너지저장장치 B 업체 관계자는 “에너지 사업은 10~20년을 앞서 봐야 하고 실제로 해외에서 25~30년 장기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 온다”며 “해외 요청이 있어도 국내 상업운전 실적이 없으면 대형 입찰 참여가 어렵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무조건 시장을 보호해달라는 게 아니라 ‘비리튬계가 필요하고 육성한다’ 등의 신호를 시장에 제때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는 유연한 전력망을 구축하는 핵심 기술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수급 불균형 △출력제한 증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시간 이상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장주기 저장장치 도입 필요성이 커진다. 지역 내 생산-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차세대 분산형 전력망의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비리튬계 에너지저장장치 전용 시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비리튬계 에너지저장장치 C 업체 관계자는 “삼원계·리튬 배터리와 동일 시장에서 경쟁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비리튬계 전용 시장과 별도 공급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에너지저장장치 입찰 시장은 kW당 단가, 즉 얼마나 싸게 전기를 공급하느냐를 기준으로 경쟁한다. 상대적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LFP·삼원계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단가 경쟁에서 유리한 반면, 플로 배터리는 안전성·장수명 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준으로 경쟁하면 가격을 맞추기 어렵다. 이 때문에 업계는 비리튬계 전용 입찰 트랙 신설 등 정부 보조 없이는 시장 진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근 이란과 미국의 갈등 고조로 중동 원유·액화천연가스(LNG)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에너지 수입국의 공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호현 기후부 제2차관은 “호르무즈 사태를 보면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체감했고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재생에너지 변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4시간 등 반주기가 아닌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가 전력망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단일 가격제 전력시장 구조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들이 나오기 힘들다”며 “유연성 자원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고 투자 회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유연성 자원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출력 변동에 따른 전력 수급 불균형을 실시간으로 조절해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자원이다.
계룡=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