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중동발 쇼크, 돌아봐야 할 ‘K-펀더멘털’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의 충격파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경제적 파장이 특히 심각하다. 중동산 석유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국제유가가 치솟고 있고, 주요 교역항로인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한 공급망 위기도 불거졌다.
한국은 주요 에너지원인 석유의 중동의존율이 70% 이상으로 높아 더 위기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 원유시장의 유가가 열흘 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지난달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로 제시하면서 두바이유 평균가격을 62달러로 제시했었다. 전쟁이 장기화돼 고유가 상태가 지속될 경우 성장률의 큰 폭 하락이 불가피하다.
고유가가 던진 충격, 흔들리는 원화와 시장
분쟁이 단기간에 끝나더라도 석유수급이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우려가 크다. 가동을 멈춘 유전이 생산활동을 정상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몇 주, 심지어 수개월이 소요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동에서 주로 들여오는 액화천연가스(LNG)는 문제가 더 크다. 천연가스 액화 시설은 한번 끄면 재가동까지 최소한 한 달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이란의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등 걸프만 국가 유전 파괴는 더 심각한 사태를 예고한다. 유전은 일정한 지하 압력 속에서 흐르는 ‘지하 혈관’과 같아서 한번 생산을 중단하면 지층 압력이 붕괴되고 원유 통로가 뒤틀려 다시는 원유를 뽑아낼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어서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에 의해 파괴된 쿠웨이트 유전 600여곳 가운데 상당수가 복구되지 못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 등 화학제품은 물론 식품·서비스 등 소비재 전반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관련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외국인 자금 이탈로 인한 원화약세(원달러환율 상승)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고유가가 고물가를 부르고,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올려 물가를 더 자극하는 ‘3고(高)’의 악순환 고리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원화가치에 대한 충격파는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발발 이후 최근까지 주요국 통화 중 원화환율이 가장 많이 상승(통화가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태 초기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채권과 주식 등 안전자산을 찾아 한국 주식을 대거 매도, 원화자금을 달러로 바꿔 빠져나간 탓이 크지만 한국의 높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상황을 더욱 부추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들어 6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환율이 2.5% 올라 같은 기간 일본의 엔(1%), 유로(1.7%), 영국 파운드(1%), 호주 달러(1.1%), 중국 위안(0.6%) 등 주요 통화들보다 상승폭이 훨씬 더 컸다.
게다가 극심한 변동성까지 보이고 있다. 이란에서의 전쟁 상황이 격화된 지난 3일 개장부터 4일 새벽 장 마감까지 원달러환율이 1459.1원에서 1506.5원까지 하루 새 47.4원이나 요동친 게 단적인 예다. 원화 환율이 달러당 1500원 선을 넘어선 건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친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었다. 한국을 보는 국제 투자자들의 시선이 얼마나 불안한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 모든 상황은 한국 경제에 복합적인 위기국면을 예고한다. 고공 행진하는 유가가 물가상승과 소비위축을 동시에 촉발해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을 부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특히 걱정스럽다. 반도체와 자동차·모빌리티, 조선과 방위산업 등이 우리 경제를 버텨왔지만 이들 산업이 중동발 쇼크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온전히 헤쳐 나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동안 ‘K-산업파워’를 떠받치는 중요 축이었던 철강과 석유화학산업은 중국 추격에 의해 위기에 빠진데 더해 중동발 충격파까지 겹쳐지면서 생사의 기로에까지 서게 됐다.
단기처방 필요하지만 재정기반 다지는 일 시급
정부는 이런 위기상황에 기민한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600만 배럴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는 등 석 달 내 3500만 배럴을 추가 확보해 석유수급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단기대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외부 수급사정에 덜 휘둘리게끔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노력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 재정기반을 튼튼하게 다지는 일도 시급하다. 우리나라가 30년 전 외환위기와 2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내는데 안정적으로 운용된 재정과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큰 역할을 했던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