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퇴직연금 20년, 수익률을 묻다

2026-03-12 13:00:04 게재

퇴직연금은 단순한 노후보장 장치가 아니다. 이 제도는 근로자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국가의 장기 투자재원을 축적하고 금융산업을 확장·선진화하며 양질의 금융 전문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1석 4조’의 제도다. 2005년 도입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퇴직연금은 우리 경제의 중요한 제도적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퇴직금 중간정산 제한, 신설 사업장 퇴직연금 자동 도입, 개인형 퇴직연금(IRP) 활성화 등 제도가 도입된 2011년은 특별하다. 특히 퇴직금 중간정산을 엄격히 제한한 법 개정은 제도 발전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사용자가 퇴직급여 관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간정산을 선호하고 근로자는 생활자금 용도로 이를 인출하는 관행이 일반화돼 있었다. 사실상 퇴직금이 노후자산으로 축적되지 못했던 것이다.

도입초기, 안전한 적립이 핵심 가치

2011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 이후에야 적립이 제도적으로 고착됐고 그 결과 오늘날 퇴직연금 적립금은 2024년 말 기준 약 431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 가운데 확정급여형(DB)은 약 214조원으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초기 정책 목표는 분명했다. 사업장 도산에 따른 체불 방지와 노후재원의 원금 보전이었다. 당시에는 ‘안전한 적립’이 핵심 가치였고 수익률은 부차적인 문제로 인식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가 성숙한 지금, 수익률은 더 이상 주변적 이슈가 아니다.

퇴직연금은 DB형과 DC형으로 구분된다. DC형은 운용 성과가 가입자에게 직접 귀속되기 때문에 최근 기금형 도입이나 전문 운용 확대 논의가 활발하다. 반면 DB형은 사용자 책임 구조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수익률 논의가 미흡했다. 하지만 DB형 역시 장기적으로는 적립금 운용성과가 기업과 기관의 재정 부담으로 연결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원리금 보장형 상품 중심의 보수적 운용이 일반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민간기업 또한 DB형 수익률 제고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전략적 자산배분이나 자산·부채 종합관리(ALM) 체계를 도입한 사례는 제한적이다. 손실 책임은 크지만 성과 보상은 분명하지 않은 구조 속에서 적극적 운용을 선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즉 민간과 공공 모두 DB형 운용에서는 구조적 소극성이 존재해왔다.

그렇다면 변화의 출발점은 어디여야 할까. 필자는 공공부문이 먼저 책임 있는 운용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고 본다. 공공기관은 파산 위험이 낮고 장기적 자산 운용이 가능한 구조적 장점을 지니고 있다.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제도와 공공기관 운영을 총괄하는 정부 당국이 DB형 퇴직연금 운용을 단순 회계 항목이 아니라 전략적 재정관리 영역으로 인식해야 한다.

공공기관 DB형 퇴직연금이 먼저 변해야

일정 범위 내 위험자산 편입을 허용하는 전략적 자산배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벤치마크 대비 성과를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DB형 수익률이 연 1~2%p만 개선돼도 장기 복리 효과는 막대하다. 이는 기관의 추가 적립 부담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국민 세금 부담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 동시에 퇴직연금 자금이 보다 생산적 자산으로 배분될 경우 이는 국가 경제의 투자 기반을 강화하고 금융산업의 전문성을 높이며 고급 금융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을 낳는다. 공공이 선도적 운용 모델을 구축한다면 민간기업 DB형에도 학습 효과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퇴직연금 수익률 논의는 제도의 성숙을 보여주는 징표다. 초기의 과제가 체불 방지였다면 이제는 실질적 노후소득 확충과 국가적 자산 운용 효율성이다. 안정성과 저수익은 동의어가 아니다. 퇴직연금은 보관의 제도가 아니라 운용의 제도다. 공공기관 DB형 퇴직연금이 그 전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김종철

한국고용노동교육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