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법개정도 좋지만 ‘책임사법’ 구현을

2026-03-19 13:00:01 게재

세상에 완전무결한 법은 없다. 1804년 제정된 나폴레옹 법전은 근대 민법의 기초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지만 지금 보면 엄청나게 전근대적이다. 무엇보다 성차별의 표본이다. 아내는 남편의 보호를 받는 존재로 정의됐다. 계약을 체결하거나 재산을 처분할 때 남편의 동의가 필요했다. 프랑스의 삼색기는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한다는데 여기에 남녀평등은 없었다. 불평등 독소는 170년이 지나 1975년에 폐지됐다. 우리는 이보다도 40년 늦은 2015년에야 폐기됐다.

도둑질은 어떨까. 기원전 21세기 제정된 우르남무 법전을 보자. 가장 오래된 성문법으로 모두 57개 조항이다. 이중 30개가 전해지는데 ‘도둑질하면 죽인다’고 명문화했다. 그로부터 300년이 지나 함무라비 법전도 ‘신전이나 왕궁 재산을 훔치거나 장물을 넘겨받아도 사형’이다. 먼 옛날에는 절도가 살인과 같은 무게의 중범죄였다.

세월이 흘러 고조선의 8조법금은 절도죄에 다소 너그러워졌다. 사형 대신 노비가 되거나 50만전을 내도록 했다. 현대는 어떨까. 우리 형법 329조는 절도의 경우 6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1953년 제정 당시와 똑같다. 달라진 것은 5만환이 1000만원으로 조정된 것뿐이다. 그나마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해마다 감액된 셈이다. 공동체의 사회·경제상황이 풍요로워지면서 절도를 대하는 법적 시각도 다소 부드러워졌을까.

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천의무봉의 법은 없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몸에 짜깁기와 덧대기로 맞추는 것이다. 우리 형법도 1953년 제정 이후 수십 차례 개정됐다. 최근 10년간 15차례나 일부 개정됐다. 사회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이버 범죄나 디지털 성범죄는 과거에 없었다. 한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열한 번 찍는다”던 남녀의 구애도 이제는 스토킹 범죄로 처벌된다. 간통죄 폐지도 그렇다. 형법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법 개정이 잦기로는 소득세법이 최상위권이다. 정부의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이기 때문이다. 경기조절이나 분배정책에는 세율구간과 공제 기준조절이 필요하다. 물가와 소득변화도 반영해야 한다. 여기에 감세냐 증세냐 하는 정치적 입김까지 더해져 거의 매년 개정되는 실정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만하다. 헌데 시대를 거슬러 퇴행하는 법도 있다. 함무라비가 가장 엄하게 처벌한 범죄는 무고(誣告)였다. 총 282조 중 1조부터 5조까지가 재판, 특히 무고 관련이다. 1조는 ‘타인을 살인죄로 고발했다가 확증하지 못하면 고발자를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오늘날로 보면 검사가 인지수사를 통해 피고인을 살인죄로 기소하고 사형을 구형한 경우이겠다. 그런데 무죄가 확정되면 해당 검사를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다. 검사로서는 등골이 서늘할 일이다.

3조는 재판에서 거짓으로 증언한 경우 소송이 생명에 관한 것이라면 거짓 증언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거짓 증언을 사주한 자도 사형일 것이다. 최근 심심찮게 불거지는 강압수사와 조작수사 의혹은 어떨까.

5조가 심각하다. 만일 재판관의 판결이 번복되면 소송에서 생기는 청구액의 12배를 지불하고 재판관은 직에서 쫓겨난다. 이러한 법 정신이 바로 “백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인권 우선주의 아닌가. 유명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법전 후반부 196조부터 214조에 가서야 나온다.

현대의 법정은 어떠한가. 무죄가 확정돼도 수사관이나 검사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그저 사법부와 견해가 다르다고 반발하면 끝이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유죄판결이 무죄로 확정돼도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는다. 한 시민의 삶이 무너져도 책임지는 수사관·검사·판사가 없다면 그것이 정의인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성문법이 마구잡이 고발과 오락가락 재판을 경고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현실에서 법관은 ‘신성가족’이자 불가침의 영역이다.

인권보호 사법체계 수립의 전제는

그런 것이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으로 조금은 바로잡히는 듯하다. 법왜곡죄와 재판소원제가 그것인데 그래봐야 겨우 함무라비 정신의 발목에 이른 정도일 것이다.

곧 시행될 공소청법과 중수청법도 수사와 기소를 분리했을 뿐 시민들로서는 진일보한 인권보호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다툼으로 비칠 뿐이다. 남은 보완수사권 논쟁이 ‘검수완박’과 ‘검수복원’을 가를 것이다. 검찰은 지난 정권에서 ‘~등 중요범죄’ 제한 규정의 ‘등’을 무한 규정으로 둔갑시켰다. 보완수사권은 아마도 ‘등등’ 정도의 숨은 마력을 가지지 않을까.

정부나 국회나 사법부 모두 사법 및 검찰 개혁에 인권보호를 앞세운다. 진정 그렇다면 무엇보다 ‘책임사법’을 구현하라. 기소도 되지 못한 수사, 무죄가 선고된 기소, 무죄가 확정된 하급심의 유죄 판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징벌하는 제도를 확립하라. 그래야 진정한 인권보호 사법체계에 성큼 다가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