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경영계, 노사자치 중심에 서라

2026-03-19 13:00:01 게재

최근 대표적인 경영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정기총회에서 손경식 회장이 5연임에 성공했다. 동시에 19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이재명정부 1기 체제로 출범했다. 한국 노사관계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중요한 시점에 경영계가 일단의 전열을 정비한 것이다.

한국 경제와 노동시장은 지금 거대한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이 몰고온 산업구조 변화에 더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패권 경쟁은 기업의 생존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란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기업의 경영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해졌다.

노동시장 역시 격변기를 지나고 있다.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 등 노사관계 제도의 변화는 기업 경영과 산업현장에 새로운 긴장을 만들고 있다. 산업 대전환과 노사관계 질서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국면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기업과 노동이 함께 지속가능한 해법을 찾는 새로운 노사관계 질서가 필요하다.

왜곡된 노사관계 만드는 정치와 사법의존성

현실의 노사관계는 여전히 과거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사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속성, 그리고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면 경영계의 책임이 더 무겁다. 그간 우리 경영계가 노사관계를 풀어온 방어적 방식은 한계가 분명했다. 첫째, 정부의존성 문제다. 노사갈등이 발생하면 산업현장에서 해법을 찾기보다 정부 정책이나 입법에 기대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 과정에서 노사관계는 정치 영역으로 옮겨가는 일이 반복됐다.

둘째, 갈등의 사법화다. 노사분쟁이 발생하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기보다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쟁의행위와 단체교섭 갈등이 손해배상 소송이나 가처분 등 법적 대응에 치우치면서 노사관계의 자율적 조정 기능은 성장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풀어야 할 문제들이 법정으로 이동하면서 협상과 타협의 문화도 함께 약화됐다.

셋째, 산업 차원의 협력모델을 만드는 데 소극적이었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여전히 기업 단위 구조에 머물러 있다. 대기업 노사관계가 전체 노동시장의 향방을 좌우하는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과 협력업체, 하청 노동자, 플랫폼·비정형 노동의 문제는 구조적으로 주변화됐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사가 머리를 맞대는 일도 부족했다.

이러한 경영계의 노사관계 대응은 노동시장과 노사관계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기에 선제적 의제를 설정하는데도 발목을 잡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여론에 힘입어 탄생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과 노란봉투법이다. 지금의 복합위기는 노사 어느 한쪽의 힘으로 돌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더구나 AI 전환과 인구구조 변화,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기업의 생존과 노동의 미래 또한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산업 경쟁력과 노동시장 안정성은 하나의 문제이며 이를 풀 주체 역시 결국 노사 공동이다.

이해관계 집단에 머물러서는 미래 열 수 없어

이제 노사관계의 중심축을 정치와 사법에서 다시 산업과 현장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 핵심이 바로 노사자치다. 노사자치는 정부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산업과 노동의 미래를 설계하는 질서를 의미한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생산과 투자, 고용의 중심에 있다. 산업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주체 역시 기업이다. 때문에 변화의 리더십 또한 경영계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 경영계는 더 이상 규제완화나 비용부담 완화를 요구하는 이해집단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산업 경쟁력과 노동시장 안정이라는 두 과제를 함께 고민하는 책임 있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지금 시대는 경영계가 노사자치의 중심에 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총 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경영계가 산업 경쟁력과 노동시장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때 노사정 사회적 대화 역시 정치의 도구를 넘어 실질적인 협력의 장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경영계가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한국 경제와 노동이 함께 살아남는 길이다.

한남진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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