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원의 일본 톺아보기
한국의 중소기업, 일본의 중소기업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중의 하나가 고유가 고환율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다. 대기업은 원가상승분을 판매가격에 전가시키기 쉬우나 중소기업은 그러기 힘들고, 대기업은 평소에 환리스크를 관리하나 중소기업은 그럴 여유가 없다.
문제는 더 근원적이다. ‘트럼피즘’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행동은 한 개인의 성향을 떠나 전후의 국제질서가 이미 종언을 고했고 세계는 격변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란 공격에서도 그 효과를 입증한 인공지능(AI) 기술 역시 그것이 초래할 금후의 파장을 예측하기 힘들어 기술혁신이 새 시대로 진입했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경제사회는 과연 지속가능할지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중소기업이다. 사회의 다수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게 큰 이유이지만, 일반적으로 변화 대응 능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이처럼 격변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전망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제조업은 자본, 일본 제조업은 사람
중소기업의 활력을 가늠하는 지표의 하나는 창업률이다. 2023년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창업률은 12.8%, 폐업율은 9.9%다. 반면 일본은 양자 모두 3.9%이다. 창업률에서 폐업율을 뺀 만큼 새로운 기업이 생기니까 한국은 매년 30만개의 기업이 늘어나는 데 비해 일본은 새로운 기업이 전혀 더해지지 않는 셈이다. 벤처기업 등 이른바 혁신형 중소기업의 활동도 한국이 더 활발하다.
물론 한국도 웃을 수만은 없다. 창업 후 5년 동안 살아남는 비율을 보면 한국은 3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5.4%을 훨씬 밑돌지만 일본은 그 비율이 무려 80.7%에 달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다산다사’는 오히려 사회의 활력을 갉아먹을 수 있기에 한국의 경우 적절한 개선책이 요구된다.
살아남은 중소기업은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까. 지난 30년 동안의 종업원1인당 부가가치액을 기준으로 살펴보자. 한일 모두 대기업의 부가가치액은 증가해 왔다. 특히 한국은 그 정도가 현저하다. 이에 비하면 후술하듯 최근에는 설비투자가 늘어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일본 중소기업의 부가가치액은 완만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한국 중소기업의 부가가치액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중소기업의 활력은 한국이 일본보다 낫다고 하겠다.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힘은 산업별로 다르다. 제조업에 초점을 맞추면 한일 양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여전히 제조업 강국이다. 2023년 기준으로 한국은 총부가가치의 27.6%를 제조업이 만들어낸다. 일본은 그 비율이 21.5%이다. 제조업 종사자 비율은 한일 모두 15.6%에 불과하니, 특히 한국의 경우 전체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1인당 부가가치를 제조업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이런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한마디로 자본에서 나온다. 2024년 현재 한국 제조업 기업의 자본장비율(종업원 1명이 보유한 기계, 설비 등의 유형고정자산)은 대기업이 4억9530만원, 중소기업이 1억8490만원이다. 반면 일본 제조업 기업은 대기업이 2324만엔, 중견기업이1259만엔, 중소기업이 743만엔이다. 단순히 엔과 원을 1대10으로 계산하더라도 한국 기업의 자본장비율이 일본 기업의 두배가 넘는다. 이런 적극적인 설비투자가 한국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1인당 한국의 절반이 안되는 설비를 가지고서도 일본 제조업이 나름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한마디로 사람에서 나온다. 제조업을 포함해 일본 기업이 전체적으로 종업원의 숙련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평균 근속년수를 보면 대기업이 13.5년인데 소기업도 11.2년이다. 소기업의 근속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숙련을 중시한다는 의미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대기업이 12~13년 정도, 중소기업이 4~5년 정도다. 중소기업의 근속년수가 지나치게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본을 상대적으로 중시한 탓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이 숙련을 형성시키려 해도 종업원이 도중에 떠나 버리니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탓이기도 하다.
그 결과가 임금격차로 드러난다. 한국의 경우 제조업 대기업의 임금을 100으로 했을 때 중소기업의 그것은 55이다. 이 격차는 이전에 비해 오히려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중견기업(100-999인)이 72, 소기업(10-99인)이 58이다. 근래 들어 이 격차는 조금씩 축소되고 있다.
AI와 로봇이 해결책이라고?
자본 중시와 사람 중시라는 특성은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노동시장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이제껏 주로 수치에 의거해 왔기 때문에 여기서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기로 하자.
몇년 전 한국과 일본의 수도권에 입지한 중소기업을 비교연구한 적이 있다. 업종도 맞춰서 비교했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금속가공 공장을 방문 조사할 때였다. 일본 공장에서는 선반을 돌리고 있는 스무살 젊은이를 만날 수 있었는데 한국 공장에서는 최연소 노동자가 40대였다. 그래서 사장님께 여쭤보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몇달 전까지 젊은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그만뒀어요. 사표를 낸다기에 극구 말렸는데 이 친구 말이 점심 시간 때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는 더 이상 뭐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한마디로 한국 제조업이 일본 제조업보다 더 빨리 ‘늙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일부 식자들은 AI와 로봇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I와 로봇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은 로봇 밀도(노동자 1만명당 로봇 대수)가 1000대을 넘어 세계에서 단연 으뜸이다. 이에 비하면 일본은 세계 산업용 로봇의 40% 이상을 생산해 내는 로봇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로봇 밀도는 400대 수준에 불과하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지금부터의 지속가능성이다. 설비는 경영자가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실제 요 몇년 사이 일본의 설비투자는 상당히 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경영자가 원한다고 해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실제 요 몇 년간 뚜렷해진 청년들의 기피 현상 때문에 한국의 제조업 취업자 중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1할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얘기하기 괴롭지만 이대로 가면 한국 제조업(적어도 제조업 중소기업)이 먼저 망한다. AI와 로봇은 자기 회사에 적합하게 설계 운용될 때 그 힘을 발휘한다. 그 설계 운용을 담당할 사람이 없지 않은가.
기업의 경영전략부터 재고해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정부 지원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중소기업 자신의 전략 설정이 먼저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일본 경영자들은 가장 중시하는 경영과제로 ‘인재확보’를 꼽았다. 그 다음으로 ‘생력화・생산성 향상’을 들었다.
반면 한국의 경영자들은 핵심 경영전략으로 ‘비용절감 및 생산성 향상’과 ‘판로 확대 및 마케팅 개선’을 꼽았다. ‘우수인력 확보 및 역량 강화’는 그 순위가 상당히 낮았다. 전략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비용절감과 판로확대를 떠올리는 것이 한국 중소기업의 관성이다. 이런 관성부터 재고해야 한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눈 앞의 성장률 달성은 물론이거니와 잠재성장률(한 나라의 생산요소 전부를 동원해 물가 상승을 초래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 자체를 높이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중소기업의 역량을 빌리지 않고 이를 제고할 수는 없다. 자본・기술과 사람을 균형 있게 중시하는 전략의 입안・실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공정책연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