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일주일 만에 100건 넘어
“예상 보다 적지만 더 늘어날 전망”
헌재, 다음주 첫 각하 사건 나올듯
법원의 확정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1주일 만에 100건이 넘는 사건이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다. 재판소원 신청 건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헌재의 업무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제도 시행 이후 첫 각하 사건이 이르면 다음 주에 나올 것으로 예상돼 주목된다.
19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지 1주일 만인 18일까지 접수된 재판소원 심판청구 사건은 총 107건이다. 이 가운데 전자접수는 65건으로 절반이 넘었으며, 방문 접수는 11건, 우편 접수는 31건이다.
당초 헌재가 예상했던 연 최대 1만5000건보다는 적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헌재 관계자는 “아직 시행 초기라 접수건수가 적지만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추세라면 연간 5000~7000건 정도 예상된다”고 했다.
헌재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전체 헌법소원심판 사건은 3066건이었다. 연간 처리 사건의 3배가 넘는 사건을 더 처리해야 할 수도 있는 셈이다.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따르면, 확정판결에 한해 재판소원을 청구할 수 있는 사유는 세 가지다(제68조 제3항). △법원의 재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재판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법원의 재판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경우이다.
헌법의 기본권 침해보다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승복할 수 없어 헌재의 판단까지 받아보겠다는 의도가 뚜렷한 사건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법원에서 이달 12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된 장영하 국민의힘 경기 성남시수정구 당협위원장은 최근 “죄형법정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판결”이라며 재판소원을 제기했다. 장 위원장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폭과 연루됐다’는 의혹을 꺼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송철호 전 울산시장 불법 정치자금 수수’ 수사 과정에서 별건으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A씨 등 3명이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대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3명에게 모두 똑같은 사유를 판결문에 적어 기본권이 훼손됐다”는 이유에서다.
의원직 상실형이 확정된 정치인이나 협박범과 같은 인물이 재판소원 제기를 시사하며 확정 판결의 불복을 위한 창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유튜버 쯔양(본명 박정원)을 협박해 수천만 원을 뜯어낸 혐의로 징역 3년이 확정된 유튜버 구제역(본명 이준희)측도 재판소원 청구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대출 사기 등 혐의로 의원직 상실형이 확정된 양문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재판소원을 시사하는 글을 쓴 게 한 사례다. 다만 양 전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재판소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재판소원 건수가 폭증하며 분쟁 해결이 지나치게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업무처리 과부하로 헌재 본연의 기능인 ‘위헌법률심판’ 수행에 차질이 생기는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헌재는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에서 사전심사를 통해 상당수 사건을 걸러내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3개의 지정재판부를 설치 · 운영하고 있다. 지정재판부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결정으로 헌법소원심판청구를 각하할 수 있다.
다음 주 초에는 지정재판부가 평의를 하는 만큼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각하 사건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정재판부는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각하결정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정으로 헌법소원을 재판부의 심판에 회부하여야 하고, 헌법소원심판 청구 후 30일이 지날 때까지 각하결정이 없는 때에는 심판에 회부하는 결정이 있는 것으로 본다.
한편 헌재 산하 연구회인 헌법실무연구회는 20일 재판소원 사전심사 운영 방안을 주제로 정기발표회를 진행한다. 재판소원 도입으로 사건 수가 연간 1만건 이상 증가해 재판관들의 업무 과부하, 심리 지연 문제 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판관과 연구관, 학계 및 실무 연구자들이 모여 사전심사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