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합병’ 손배소…위법성·손해 놓고 충돌

2026-03-20 13:00:10 게재

국민연금 “승계 위법 합병으로 막대한 손해”

삼성 “무죄 확정 사안, 위법·주주 피해 없다”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첫 변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방에 들어갔다. 형사재판에서의 무죄 판단에도 불구하고 민사상 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정용신 부장판사)는 19일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법인과 이 회장,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차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5억1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2024년 9월 소송 제기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이날 국민연금측은 합병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조직적 작업이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측은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1대 0.35)이 적용돼 최대주주인 공단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며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고 삼성물산 가치를 낮춘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 의사결정 책임자인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의 책임도 함께 지적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된 점에 대해서는 “유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 위법성이 없다는 판단은 아니다”라며 “민사상 책임 판단이 별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측은 위법성과 손해 발생 모두를 부인했다. 이 회장측 변호인은 “관련 형사·민사 사건에서 합병의 적법성과 주주 손해가 없었다는 점이 이미 확인됐다”며 “수년간 수사와 재판을 거친 사안을 다시 다투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에서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무죄가 확정된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측 역시 “합병이 무산됐다면 오히려 더 큰 손해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쟁점을 합병 자체의 위법성, 정부의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개입 여부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손해배상 책임과 인과관계를 우선 심리한 뒤 손해액 산정으로 나아가는 방식의 심리 방향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날 메이슨·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과 소액주주 손해배상 소송 등 관련 사건과의 사실관계를 정리해 제출할 것을 양측에 요구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 당시 의결권 행사 주체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를 주장하는 점에 대해 논리적 정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앞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제일모직 1주를 삼성물산 0.35주로 교환하는 비율로 합병을 결의했고, 같은 해 7월 주주총회에서 가결됐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했으나 이후 손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 관련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은 합병 찬성을 압박한 혐의로 각각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고, 이 회장도 국정농단 사건에서 같은 형이 확정됐다. 다만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합병을 계획·추진하고 회계 부정 등을 저지른 혐의는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바 있다.

한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해외 투자자들이 ISDS를 통해 배상을 받은 점을 언급하며 “삼성이 날린 국민 노후 자금을 회복해야 한다”며 “형사 재판과 별개로 민사에서 합병 책임자들의 배상 책임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오는 6월 4일 2차 변론기일을 열고 추가 심리를 이어갈 예정이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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