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글로벌 경제의 위험한 뉴 노멀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 20일 만에 단순한 사건을 넘어 일종의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전쟁이 조기에 끝나지 않고 장기화되면 단순한 고유가를 넘어 글로벌 경제의 작동방식 자체가 바뀌는 위험한 뉴 노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전쟁의 1차 충격은 분명하다. 이란과 인근 산유국의 원유와 가스 시설이 직접 타격을 받았고, 호르무즈 해협 운항 제한으로 중동산 원유의 실질 공급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시적 위기 과정에서 에너지 기업과 수요국은 재고를 더 쌓거나, 더 비싸더라도 우회 물류를 찾거나, 비효율적인 설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바꿀 수밖에 없다.
전쟁 장기화되면 글로벌 경제 작동 방식 바뀔 위험성 커져
물가의 성격도 달라질 것이다. 전쟁 장기화는 경기가 나빠져도 물가가 잘 떨어지지 않는 구조적 물가상승을 고착시킬 위험이 있다. 각국이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을 분산하고 전략비축을 늘리며, 지정학적으로 안전한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과정은 비용을 수반한다.
이러한 공급측 물가압력은 중앙은행에 가장 불편한 조합이다. 기준금리를 낮추자니 물가와 환율이 부담이고, 금리를 높게 유지하자니 성장과 고용이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금리 또는 할인율의 수준과 경로가 불안해지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위험자산 투자다. 최근 몇년간 글로벌 증시와 경제를 이끌어 온 인공지능(AI) 관련 투자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에 막대한 초기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에너지 가격과 자금 조달 비용의 구조적 상승은 기대수익률과 밸류에이션을 낮춘다.
지난 10여년간 급팽창한 사모부채펀드 시장도 문제다. 에너지와 물류 비용 상승, 고금리 장기화가 겹치면 마진이 작은 중견기업의 신용위험이 높아진다. 이러한 상황이 환매 중단이나 펀드런으로 이어지면 실물 기업의 자금줄이 막히는 금융위기와 다른 형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달러체제도 불안해질 수 있다. 달러가 유일한 안전자산 기능을 수행하는 단기적 상황이 지나면 달러의 위상 변화와 글로벌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타날 것이다. 여기에 지금의 환경은 공급망 블록화를 가속할 소지도 크다. 에너지와 원자재, 소재를 둘러싼 상호제재가 반복되면 각국은 효율성보다 안정성을 우선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생산과 공급망은 더 촘촘하지만 더 비싼 지역 블록들로 나눠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세계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깎아내린다.
물론 다른 경로도 있다. 전쟁이 이른 시점에 마무리되어 호르무즈 해협 운항이 정상화되고, 파괴된 에너지 인프라가 빠르게 복구되면 지금의 고유가 고환율 국면은 몇 개월짜리 상처로 남는 데 그칠 수 있다. 오히려 원전, 재생에너지, 에너지 효율 기술, 소재와 부품 국산화 같은 산업이 촉진되면서 성장동력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기업과 가계, 정부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앞서 살펴본 대로 각종 비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에 대한 대응과 준비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불확실한 전쟁 종료 시점 예측이 아니다. 정부는 전쟁이 6개월, 1년 이상 이어져도 버틸 수 있는 에너지나 물류구조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 통화정책이 무력화되는 상태에서 고금리 고환율에 취약한 가계와 기업 신용 문제를 어떤 재정 정책으로 대응할 것인지 등을 치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또한 투자자들은 전쟁의 단기 종료에 수혜를 입을 투자를 점검하는 한편, 장기화에 적합한 투자를 포트폴리오 내에 조합해야 한다. 모두에게 전망보다 대응과 준비가 더 필요해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