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칼럼
왕 되길 거부한 워싱턴, 왕이 되고픈 트럼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왕이 될 수 있었다. 미국 독립선언 이후 장교들이 워싱턴 총사령관에게 왕이 되라고 간청했다. 1782년 5월 루이스 니콜라 대령은 워싱턴을 찾아가 아메리카의 왕 조지 1세가 돼 달라는 편지를 전달했다. ‘군 전체의 뜻’이라는 이 요청은 시대흐름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세계는 모두 왕이 통치하는 시대였다.
워싱턴은 왕이 되는 걸 거부했다. 당시 헌법에 임기 제한 조항이 없었으나 그는 재선 대통령을 끝내고 물러났다. 마음만 먹었으면 종신 대통령도 가능했다. 공화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워싱턴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워싱턴의 위대한 결정으로 미국은 민주적인 정치 시스템을 운영하는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2차세계대전을 겪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유일하게 4선 대통령이라는 예외 사례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는 선출된 대통령임에도 왕처럼 나라를 다스리려는 노욕으로 가득 찼다. 실제로 절대 왕인 양 행동하기도 하고 왕으로 불리고 싶어 할 정도다. 어느 역대 미국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행태를 서슴없이 보여준다. 백악관 집무실은 왕의 상징인 각종 황금 장식과 트로피로 채워졌다.
공화정과 민주주의 가치 지킨 워싱턴
트럼프는 국내 정치는 물론 대외정책도 마음 내키는대로 한다. 의회와 법원을 무시하는 일은 다반사다. 국내 치안유지를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이민자들을 잔인하게 추방한다. 법원 판결을 얕보고 최강국의 오랜 전통인 대외 원조도 단칼에 삭감해 버렸다. 낡은 시대의 관세를 동원하는 일도 국민의 대표인 의회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독단으로 처리한다.
트럼프는 연방정부의 권한이 아닌데도 뉴욕의 혼잡통행료 정책 시행을 중단하라고 명령해 비난을 샀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가 자신을 ‘왕’이라고 지칭해 논란이 일었다. 이때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 ‘혼잡통행료는 이제 죽었고, 맨해튼과 모든 뉴욕이 구원을 받았다. 왕 만세!’라는 글을 남겼다.
백악관도 이에 호응하듯 트럼프가 맨해튼을 배경으로 왕관을 쓴 이미지를 인스타그램과 X(옛 트위터)에 올려 비판을 자초했다. 이 게시물에는 ‘당신은 왕이 아니다.’ ‘미국을 군주제로 만든 건 헌법에 대한 모욕이다’ 같은 비판 댓글이 쇄도했다.
트럼프가 왕 놀이를 좋아하자 해외에서도 아부외교가 성행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은 트럼프를 ‘왕처럼’ 대접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트럼프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주에서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특별하다”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주요 50개 도시에서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의 여러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였다. 트럼프의 두번째 임기 동안의 정책과 행동, 그의 파시스트적 성향, 미국 민주주의 후퇴에 반대해 일어난 시위다. 이 시위는 6월 14일 미국 육군 250주년 기념 퍼레이드와 트럼프의 79번째 생일과 같은 날에 일어났다. 2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5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을 만큼 대규모다. 넉 달 뒤 10월에 열린 ‘노 킹스’ 시위에는 앞선 시위 때보다 200만명이나 더 많은 700만명이 참가했다.
‘노 킹스’ 시위가 오는 3월 28일 미국 전역에서 또다시 대규모로 열린다는 공지가 떴다. 올해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잔혹한 단속, 이란전쟁, 그에 따른 유가와 물가 상승으로 말미암아 작년보다 더 많은 시위 인파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올해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트럼프의 초상이 담긴 기념주화를 발행하기로 연방 미술위원회가 지난주 결정하자 또다시 ‘왕’ 논란이 불거졌다. 기념주화에는 트럼프가 연초 자신의 관세정책 정당성을 홍보할 목적으로 소셜미디어에 ‘관세왕(Tariff King)’이라는 문구와 함께 올린 모습 그대로 담긴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화폐에 현직 대통령의 얼굴을 넣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연방 조폐국 규정에도 주화에는 살아있는 인물을 새기지 않는 게 원칙으로 정해져 있다. 이 금화는 유통되지 않는 기념주화여서 법적 제한을 피해 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의 황금 사랑은 유명하다. 그는 취임 직후 백악관 집무실 몰딩 장식 같은 걸 금 마감재로 바꿨다. ‘왕’을 상징하는 황금색 소품도 곳곳에 배치했다. 새로 건립할 대형 연회장도 황금빛을 콘셉트로 잡았다.
미국 전역에서 또다시 ‘노킹스 시위’예고
18세기 첫 대통령 워싱턴은 원하기만 하면 왕이 될 수도 있었으나 단호히 거부했다. 역설적으로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트럼프는 전근대적인 왕을 꿈꾸고 있다.
미국인들은 250년 동안 트럼프처럼 왕을 자처하는 대통령을 경험한 적이 없다. 현대 민주주의가 싹튼 나라가 미국이다. 시대착오적인 왕을 꿈꾸는 최강국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온 세계가 고통받는 불운의 시대를 견뎌내야 한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