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연금은 진정한 스튜어드십코드를 이행해야

2026-03-23 13:00:16 게재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가 19일 고려아연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현 경영진 측 후보 2인의 이사 선임에 의결권 미행사를 결정했다. 감사위원 후보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수책위는 ‘기업가치나 주주권익 침해 이력 등’ 추상적 사유로 제시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 16조5812억원, 영업이익 1조2324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 대비 37.6%, 70.3% 증가한 것으로, 제련수수료(TC)가 역사적 최저 수준을 기록하는 등 심각한 업황 악화 국면에서 이룬 성과라는 점이 더욱 주목된다. 2000년 분기실적 공시 의무화 이후 104분기, 즉 26년 연속 영업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동종 글로벌 제련사들이 적자와 감산으로 허덕이는 가운데 고부가가치 핵심광물 회수율을 높이고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해 이룬 탁월한 경영 역량의 산물이다.

2022년부터 추진된 신사업 전략 ‘트로이카 드라이브’(신재생에너지·그린수소,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도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미국 자원순환 자회사 페달포인트가 설립 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기록했으며, 이차전지 소재·전략광물 라인업 확대가 사상 최대 실적을 뒷받침했다. 제련 본업과 신사업의 시너지가 수치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와 공동 추진 중인 ‘프로젝트 크루서블’은 고려아연의 미래 성장 잠재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약 74억달러(약 11조원)를 투자해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한 비철금속 13종을 생산하는 통합 제련소를 건설하는 이 프로젝트는, 미국 상무부·국방부가 직접 참여하는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핵심 사업이다. 전체 투자액의 91%를 미국 정부와 투자자가 부담할 정도로 국제적 신뢰가 검증된 사업이며, 국민연금도 Crucible JV 추천 후보(Walter Field McLallen)에게 집중투표 의결권의 절반을 행사함으로써 이 프로젝트의 전략적 가치 자체는 사실상 인정했다.

주주가치 측면에서도 총주주환원율이 2024년과 2025년 2년 연속 200%를 초과 달성했으며, 공개매수로 취득한 자사주 204만주를 전량 소각해 주주와의 약속을 지켰다. 영풍·MBK가 제안한 3925억원의 2배가 넘는 9177억원의 임의적립금 전환을 제안하며 주주환원 주도권도 선점했다.

국민연금은 금년 주총에서 네이버, KB금융지주, 하이트진로, HS효성첨단소재 등 기업들의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대해 “경영 성과에 비추어 볼 때 과도하거나 적정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보수 몇 억원을 깎는 지엽적인 정의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시가총액 33조원이 넘는 국가 미래를 짊어질 고려아연과 같은 초우량 기업의 미래에 대해서 침묵하는 모습은 진정한 스튜어드십코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현 경영진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 명약관화한 상태에서, 국민연금이 결정적인 순간에 ‘미행사’라는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국가 기간산업의 향방을 결정하는 책임을 회피했다는 오명과 함께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웠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최근 일련의 상법 개정안의 취지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임을 감안하면, 입법 취지에 역행하는 무책임한 행보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