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호르무즈 봉쇄, 식량쇼크 경고음

2026-03-25 13:00:08 게재

이제 세계 시장은 더 이상 '평평한 공간'이 아니다. ‘평화 배당금’을 즐겼던 지난 30년간의 세계 경제에서 공간은 그저 운송비용과 관리비용의 문제일 뿐, 대개 균질적인 추상적 공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몇년 간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전쟁과 이번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계기로 지리학 혹은 지정학의 논리가 세계 경제에 전면적으로 등장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지 한달이 다 되어가지만 뉴스의 초점은 여전히 석유 및 LNG와 같은 에너지 가격에만 쏠려 있다. 하지만 지구적 산업 문명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비료 또한 이번 봉쇄로 물류가 막혀 버렸다는 사실은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넘어 비상 걸린 비료시장

호르무즈 봉쇄로 연간 약 1600만 톤의 비료 생산 능력이 걸프만 안에 갇혔다. 이는 세계 해상 요소 인산염 거래량의 약 35%가 하룻밤 사이에 시장에서 사라진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비료시장의 불안은 이듬해 수확을 막아버란더. 전세계 곡물 시장은 일찍이 이러한 불안감을 반영하기 시작한다.

3월 중순 현재 요소 가격은 한달 만에 45% 급등해 톤당 674달러에 달했다. 무수암모니아는 924달러로 2023년 이후 최고치다. 황 가격은 두 배로 뛰었다. 하지만 가격등귀보다 훨씬 더 불길한 신호가 있다. 미국 중서부와 유럽 일부 지역에서 비료판매상들이 아예 가격고시를 중단해 버린 것이다. 가격의 추가급등 리스크를 관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배송 자체를 보장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단순히 오른 것이 아니라 가격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이는 단순한 가격충격이 아니라 공급붕괴의 위험을 암시한다.

비료로 인한 충격은 에너지 수급의 충격만큼 현실세계에 즉각적인 고통을 낳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 지평을 내년까지로 넓혀 보면 어쩌면 더 큰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봄 파종기인 지금 비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 이는 가을 수확기에 식량가격 등귀로 나타날 것이고, 다시 내년의 소비자 식료품 물가로 충격이 전달될 것이다.

지금 곡물시장의 가격 자체는 아직 큰 변동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시장구조가 크게 바뀌고 있다. 3월 중순부터 헤지펀드 등의 기관투자자들이 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순매수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옥수수와 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비료를 많이 쓰는 옥수수의 생산비용이 폭등하면서 대규모 경작지들이 대두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는 사료가격 등귀로 이어져 육류 및 유제품 등의 가격 불안까지 암시하고 있다.

식량가격의 불안이라는 문제의 함의는 실로 심각하다. 식료품 가격이 오를 때의 충격은 선진 산업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후자의 경우는 식비가 가계지출의 절반 정도에 육박할 정도이므로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2011년 ‘아랍의 봄’도 그 직접적 도화선이 식량가격 급등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저개발국 곳곳에서 들려오는 식량 위기 신호

신흥 산업국으로서 지구적 가치사슬에서 중요한 기둥을 이루고 있는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베트남 같은 나라들은 지금 이중의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유가와 에너지가격 상승이 생산원가를 밀어올리고 있으며, 다른 쪽에서는 식량가격 급등으로 인한 생활비 앙등과 실질임금 폭락의 위험이 넘실거리고 있다.

인도의 IT 산업과 복제약, 방글라데시의 의류, 에티오피아의 커피 등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복잡한 지구적 가치사슬 전체에 미치는 충격은 어떻게 될까. 자칫 1970년대의 전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이 되돌아오는 것일까. 불안한 눈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주시할 뿐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