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재보상, 인력·예산 확충 없는 장밋빛 청사진은 허구

2026-03-25 13:00:20 게재

지난 12일 고용노동부는 ‘산재·보상·일터복귀 종합지원단’ 회의를 킥오프하면서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 범위 전국민 확대 및 산재 선보상 제도 도입 논의를 시작했다.

산재보상 최일선 공공기관인 근로복지공단(공단) 현장 노동자들과 아무런 소통없이 오직 국민만 보고 일방통행하고 있다.

공단 노동자들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이는 단순히 인력·예산 증원 요청에 대한 거절을 넘어 공단의 성과가 누구의 헌신으로 지탱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을 보여준다. 또한 구조적 고통을 개인의 인내로 치부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숫자에 가려진 ‘업무상질병 처리기한 단축’, 구조적 위기

공단의 업무량은 매년 기록적인 수치를 경신하고 있다. 2018년 1만3000건 수준이던 업무상 질병 접수는 2025년 5만건을 돌파하며 4배 가까이 폭증했다. 그러나 인력 충원은 거북이걸음을 반복해 왔고 그 공백은 현장 노동자들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메워졌다. 최근 강조되는 ‘업무상 질병 처리기한 단축’ 역시 시스템의 혁신이 아닌 강제적 인력 재배치와 노동자들의 희생을 쥐어짜 만든 ‘숫자의 유희’일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부 붕괴다. 4대 사회보험 공단 중 최하위권인 임금 수준과 비정상적인 직급 구조는 신규 입사자의 높은 퇴사율(22%)과 숙련 인력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현장은 이미 ‘혁신’이 아닌 ‘생존’을 위해 버티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준비없는 ‘소득기반 고용보험’, 현장 혼란 우려

이러한 한계 상황 속에서 추진된 ‘소득 기반 고용보험’ 법안은 현장의 우려를 정점으로 치닫게 했다. 사각지대 노동자 보호라는 정책 취지에는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실무를 담당할 공단의 인력과 전산 인프라에 대한 대책 없는 추진은 공공 서비스의 질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근로복지공단노동조합은 국회 앞 1인 시위와 대정부 투쟁을 통해 현장의 실상을 알렸고 그 결과 국회 상임위 통과 과정에서 유의미한 보완책을 이끌어냈다. △2028년까지 국회 상임위에 인력·예산 확보 현황 보고 △노사정 간 제도 개선 논의 공식화 △이중취득 인정 등 제도개선 논의 등이 부대의견으로 명시된 것은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현장의 헌신이 자부심이 될 수 있어야

이제 공은 정부와 경영진으로 넘어갔다. 노동조합은 ‘업무상 질병 처리기한 단축’ 때문에 우리 공단 노동자들의 생명이 더 이상 단축되지 않도록 하겠다. ‘소득기반 고용보험 법안’ 관련해서는 노동부와 업무협약(MOU) 체결 등을 통해 실질적인 인력 확충과 예산 확보가 이뤄지는지 끝까지 감시하겠다. 만약 부대의견이 단순한 ‘립서비스’에 그치거나 조합원의 일방적 희생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더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

공공기관의 수장은 현장을 통제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현장을 보호하고 정책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뒷받침하는 책임자가 돼야 한다. 성과 뒤에 숨은 노동자의 비명을 외면한 채 얻어낸 숫자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는 이제라도 현장의 헌신을 ‘한계’라 규정짓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그 헌신이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 현장이 살아야 국민의 복지가 산다. 그것이 바로 근로복지공단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신현우 근로복지공단 노조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