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에너지안보의 숨통 ‘호르무즈’
대한민국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하루 원유량은 270만~280만 배럴이다. 이중 약 70%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페르시아만 국가에서 수입된다. 200만 배럴을 적재한 초대형 유조선이 사실상 매일 한 척씩 페르시아만에서 한국을 향해 출항해야 하는 구조다.
그런데 지금 전쟁중인 미국과 이란의 긴장 속에서, 이란과 오만 사이의 좁은 병목을 통과하지 못하고 페르시아만 안에 묶여 있는 유조선 몇 척은 곧 한국 경제의 ‘며칠치 시간’이기도 하다. 비축유가 있어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만 이란과 오만 사이 통로가 완전히 막히는 순간 상황은 곧 중대위기로 바뀐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 등 전세계의 에너지 안보가 동시에 압박을 받게 된다.
그 바다 길목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이 해협 봉쇄 가능성은 반복적으로 거론되어 왔다. 호르무즈 해협은 지도에서 보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바다 한 줄이다.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 이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이 폭 40km에 불과하다. 이 해협은 북쪽의 이란과 남쪽의 오만 사이에 형성돼 있다.
그러나 이 지리적 사실은 오히려 하나의 착각을 낳는다. 유조선이 오만 쪽으로 붙어 지나가면 안전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만 근처의 수심과 암초 등으로 대형 유조선은 일정 거리를 이란영해를 통과해야 한다. 더구나 이란의 군사적 영향력은 해협 전체에 미친다. 해안에 배치된 미사일, 고속정과 드론 전력, 그리고 무엇보다 기뢰 부설 능력은 이 좁은 바다를 하나의 ‘통제 가능한 공간’으로 만든다.
단순 항로 아닌 세계 에너지의 병목
이 좁은 물길을 통해 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약 30%가 지나간다. 이 바다가 불안해지면 국제 유가가 흔들리고, 에너지 시장이 요동친다. 이곳은 단순한 항로가 아니라 세계 에너지 안보의 ‘병목’이다.
국제 정치에서 이란과 미국 사이의 긴장이 거론될 때마다 시장이 먼저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동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던져지는 질문은 하나다. “호르무즈는 안전하게 열려 있는가.” 세계 에너지 체계의 동맥이 이 좁은 바닷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국의 저널리스트 팀 마셜이 쓴 책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모든 국가는 지정학의 포로”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이란이 쥐고 있는 비장의 카드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목했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장은 이 한 문장을 가장 압축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세계는 넓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 개의 좁은 바다 위에 서 있다. 호르무즈 해협과 더불어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홍해입구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파나마 운하, 터키 해협, 지브롤터 해협까지 세계 경제는 결국 몇 개의 ‘좁은 바다 길목’에 의존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호르무즈는 에너지 안보라는 측면에서 가장 민감한 곳이다.
이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의 핵심에는 이란이 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였던 이 나라는 중동에서 가장 먼저 석유가 개발된 지역이며, 오늘날에도 하루 약 300만 배럴 안팎의 원유를 생산하고 매장량 3위의 주요 산유국이다. 그러나 이란의 진짜 영향력은 생산량이 아니라 위치에서 나온다. 페르시아만의 석유가 세계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 즉 호르무즈 해협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과 미국의 갈등은 이 구조 위에서 반복되어 왔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의 유조선 전쟁, 2011년 봉쇄 위협, 2019년 유조선 나포 사건은 모두 같은 질문으로 귀결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안전한가.”
최근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페르시아만 일대는 언제든 대규모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 되었다.
한국 경제의 ‘시간표’를 좌우하는 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이유로 일본 한국 중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에 군함 파견을 요청하면서 문제는 국제적 선택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해상안전 문제가 아니라 동맹·경제·군사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특히 대한민국과 일본 같은 에너지 수입국에는 매우 현실적인 고민이 된다.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 거리를 둘 것인가. 그 선택은 외교적 입장뿐 아니라 에너지안보와 직결된다.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더 이상 먼 나라의 분쟁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시간표’를 좌우하는 변수가 되었다.
에너지 전환이 말처럼 빠르게 진행된다면 이 위험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세계는 석유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그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호르무즈 해협은 계속해서 세계 질서의 불안정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남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에너지안보의 숨통은 그 좁은 바다 위에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