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각자도생 시대, 눈여겨 봐야 할 호주식 안보협력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은 여러 측면에서 예측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로 끝내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 이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정권교체나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해외에 군사개입하던 전임 대통령들을 비난한 그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서 정권교체를 목적으로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그는 중국을 제일 위험한 잠재 적국이라 규정하고 아시아에서 중국의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저지하겠다고 한 후 지금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적잖은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오바마정부부터 시작되었던 ‘아시아로 회귀(Pivot to Asia)’라는 대전략과 어긋나고 있다. 10년 전부터 미국은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빼내 아시아 지역으로의 전환배치를 추진해왔다. 그런데 지금은 주한미군 전략 자산들마저 중동으로 재배치되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바이든행정부가 노력을 기울여왔던 동맹국과의 연대구도도 관세부과와 파병문제 등으로 불필요한 마찰을 계속 일으킴으로써 많이 약화되고 있다.
이는 자신의 공약은 물론 미국의 세계전략을 저버리는 현상이다. 이런 행보는 미국의 신뢰성을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패권 유지에는 신뢰성이 중요하며 이 신뢰성은 쌓기는 힘들어도 허물어지기는 쉽고, 다시 짓기는 더 힘든 법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예측불가능성이 증대하고 신뢰성이 하락함에 따라 미국의 동맹국들은 각자 살길을 찾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내몰리고 있다.
소다자 협력을 선도하는 호주
각자도생의 한 방편으로 많은 나라들이 자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소규모의 안보·경제협력체를 만들어 나간다. 이런 협력체들을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 또는 삼각협력체라고 부른다. 바이든행정부 때는 미국의 동맹구조를 ‘축과 바퀴살(Hub & Spoke) 구조’, 즉 미국을 축으로 여러 동맹국과 일대일 안보협력을 하는 기존의 구조에서 ‘격자형(Lattice) 구조’로 변경하겠다고 했다. 이 구상은 미국을 비롯한 서너 개의 국가들이 격자처럼 서로 엮인 안보협력체가 일대일 동맹 체제인 ‘축과 바퀴살 구조’보다는 더 튼튼하다는 계산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소다자주의 또는 삼각협력체 구성을 가장 잘하고 있는 나라가 호주다. 호주는 맨 먼저 미국 영국과 2021년 오커스(AUKUS)라는 삼각안보협력체를 결성했다. 이 협력체를 통해 미영 양국은 호주의 원자력잠수함 건조를 도와주기로 했다. 호주는 또 미국 일본과 더불어 삼각 안보대화체를 운영하고 있다. 미·일·호 간 ‘3국 안보대화(TSD)’는 태평양 해역 내 억제전략을 같이 수행하고 군사장비의 호환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삼각협력체 틀 안에서 호주는 일본에 12척의 호위함 건조를 주문했고 다른 방산 협력도 추진 중이다.
호주는 일본, 인도와 힘을 합쳐 인도양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해양안보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호주는 인도를 중심에 두고 캐나다 인도네시아와 별도의 삼각안보협력체를 각기 가동하고 있다. 3월 초 호주는 그간 여러모로 유사성이 많아 국제무대에서 협력보다는 경쟁 상대였던 캐나다와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이러한 호주의 행보는 국제정세 변화에 대응해 자국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선제적으로 다변화·중층화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미국 한 나라에만 안보를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인식하에 다양한 형태의 안보협력체를 동맹의 보완재로 준비해 두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호주와 유사한 경제·안보딜레마, 즉 미국의 동맹이자 중국의 경제파트너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미국에만 안보를 너무 의존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도 호주처럼 소다자 삼각안보협력체를 더 많이 구성하는 전략적 행보를 해나가야 한다. 우리도 지난 정부 때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를 출범시켰으나 3국 합동훈련을 역내에서 아직 수행하지도 못해 실효성이 제한적이다.
한국도 안보 포트폴리오 넓혀야
시대의 변화를 잘 읽어서 큰 파도에 휩쓸리기 전에 미리 대비를 하는 게 제대로 된 나라의 국가전략이다. 최근 카니 캐나다 총리가 다보스연설에서 인용한 ‘식탁에 앉지 못하는 나라는 메뉴 위에 올라간다’라는 경구를 명심해야 한다. 자국이 주도적으로 전략을 준비하지 못하면 다른 국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우리가 원하는 호주 캐나다와의 방산협력도 전략적 협력관계가 전제될 때 더 잘 진행될 수 있다. 한 학술회의에서 전직 호주 국방장관은 “꼬리가 개를 흔들 수는 없다”라는 말로 한·호 간 전략적 협력 없이 방산협력만 진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에둘러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