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장서 커지는 투자자 목소리
배당서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경쟁으로 축 이동 … 이사회 주도권 표 대결도
주총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배당 협상을 넘어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을 둘러싼 표 대결이 확산되며, 주총이 이사회 주도권을 겨냥한 경영권 경쟁의 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정기 주주총회는 마무리 국면에 들어섰지만 주요 기업들은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주요 기업들에서 투자자와 경영진 간 충돌이 이어지며 주총이 사실상 경영권 시험대로 기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올해 상장사 주총 안건 중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등 이사회 관련 안건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배당·자사주 중심에서 이사회 주도권 경쟁으로 축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상법 개정 논의로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 제도 기반이 강화되는 데다, 소유분산기업이 늘어나면서 최대주주 지분만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 결합도 확산되는 흐름이다.
◆대주주 간 충돌 확산 =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고려아연, 한진칼, 롯데홈쇼핑 등에서는 최대주주와 2대 주주 간 갈등이 이사회 구성과 경영권을 둘러싼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은 올해 주총에서 치열한 경영권 경쟁이 벌어진 사례로 꼽힌다. 최윤범 회장측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이사회 구성 방식을 두고 대립했고, 위임장 확인 과정이 길어지며 주총이 지연되기도 했다.
‘5인 선임안’과 ‘6인 선임안’ 표 대결에서는 두 안건 모두 과반을 넘겼지만 다득표 원칙에 따라 회사측 안건이 채택됐다. 이사회는 ‘11대 4’에서 ‘9대 5’로 재편됐다. 지분에서는 MBK·영풍측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보였지만, 표 대결에서는 회사측 안건이 약 63%를 얻었다. 업계에서는 소액주주와 기관·외국인 투자자의 표심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갈등은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영풍·MBK파트너스가 주총 관련 자료에 대한 증거보전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결의 취소 소송 등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는 9월 주총에서 다시 표 대결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지주사로 그룹 경영권이 사실상 이곳에서 결정된다. 조원태 회장측과 2대 주주인 호반그룹 간 지분 격차가 1%대까지 좁혀지며 경영권 경쟁 가능성이 거론됐다. 다만 주총에서는 사내이사 선임 안건이 약 94% 찬성으로 가결됐다.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델타항공과 산업은행 등 우호지분이 결집한 결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두고 갈등이 해소됐다기보다 일시적으로 봉합된 상태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분 격차가 크지 않고 우호지분 의존도가 높은 구조가 이어지는 만큼 향후 주요 안건에서는 다시 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롯데홈쇼핑 역시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사례로 언급된다. 롯데그룹과 지분 약 45%를 보유한 태광산업은 내부거래 문제 등을 둘러싸고 입장 차이를 보였고, 대표이사 해임 요구와 임시 주총 소집 요구로 이어졌다.
태광산업은 사외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와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홈쇼핑측은 관련 의혹을 부인하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장기간 이어진 갈등이 향후 경영권 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행동주의·소액주주 움직임 확대 = DB손해보험과 코웨이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사외이사 선임을 통해 이사회 진입을 시도했고, LG화학 등에서는 소액주주가 결집해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DB하이텍에서는 주총의 핵심 의제가 실적에서 감사위원 선임과 내부통제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사회 견제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고 보고 있다.
올해 주총은 겉으로는 대부분 경영권 방어로 마무리됐지만, 내부적으로는 지배구조 갈등이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 방어를 넘어 이사회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해석이다.
국민연금의 태도 변화도 주요 변수로 꼽힌다. 과거에는 경영권 분쟁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지배구조 기준을 중심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 한진칼에서는 반대, 고려아연에서는 기권 등 사안별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더라도 실제 안건이 부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반대 의견을 낸 안건 가운데 실제 부결로 이어진 비율이 5% 내외에 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단순 찬반 결과로만 볼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외국인 투자자나 소액주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실상 ‘기준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향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가 결집할 경우 최대주주 지분만으로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주총이 형식적 절차를 넘어 경영권 경쟁의 출발점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지배구조를 사전에 관리하지 않을 경우 경영권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