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전쟁 ‘글로벌 식량위기’ 부른다
우크라이나전쟁, ‘세계 곡물창고’ 파괴 … 이란전쟁, ‘비료원료 생산거점’ 붕괴
이란전쟁이 에너지 파동뿐 아니라 글로벌 식량위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경고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전쟁으로 비료원료인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시설들이 파괴되고,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비료 운송이 막히고, 원유가격 상승으로 농산물 생산 비용이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세계 해상운송 원유와 액화천연가스와 비료의 약 1/4이 통과하는 글로벌 물류의 핵심 동맥이다.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기름값 상승과 비료 부족으로 전세계 농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바레인 등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 밀과 옥수수 쌀 대두 설탕 등으로 생활을 한다. 해협 봉쇄가 풀리지 않으면 이 지역 6000만여명의 주민들은 심각한 식량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2022년 2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글로벌 식량 시스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 바구니’라고 불리는 세계적 곡창지대다. 전쟁으로 밀 생산이 줄고 수출길마저 막히면서 전쟁 직후 한때 밀 가격이 50% 이상 폭등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세계 곡물창고’에 포탄을 쏟아부었고, 이란전쟁은 ‘세계 비료 통로’를 봉쇄한 셈이다. 두 전쟁이 글로벌 식량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충격
최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와 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유엔 산하 기구들은 일제히 이란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식량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세계 에너지 시장과 해상 운송,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큰 충격을 미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UNCTAD는 10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교란: 글로벌 무역과 발전에 미치는 영향(Strait of Hormuz disruptions: Implications for global trade and development)’이라는 제하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중요한 해상 병목 지점 중 하나로, 해상으로 운송되는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와 비료의 약 1/4이 이곳을 통과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개발도상국들은 이미 높은 부채상환 부담과 제한된 재정여력, 금융 접근성 제약 등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운송・식량 비용 상승은 경제적·사회적 긴장을 심화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UNCTAD는 이번 위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충격과 코로나19라는 글로벌 보건 위기에 이어 발생함으로써 취약계층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자급형 소농부터 대형 농・식품 기업에 이르기까지 에너지비용 상승과 비료가격 급등이라는 ‘이중충격’을 동시에 겪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UNCTAD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탄자니아와 케냐 등 이번 전쟁터에서 수천km 떨어진 지역의 주민들이 생계의 위기를 체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트럼프의 전쟁은 전세계 기아를 더욱 심화시키는 용납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WFP “퍼펙트 스톰 직면”
WFP 역시 이란전쟁으로 인한 식량위기를 경고하고 나섰다. WEF는 17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이란전쟁이 6월까지 계속될 경우 전세계 급성 기아 인구는 지금보다 4500만명이 늘어난 3억6000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우려했다.
WFP “우크라이나전쟁과 이란전쟁은 각각 세계 곡창지대와 에너지 허브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에너지 시장과 식량 시장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그 충격은 비슷하다”고 밝혔다. 칼 스카우 WFP 사무차장은 “현재 WFP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직면해 있다”면서 “분쟁과 극단적 기상 현상, 기근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FAO는 18일 ‘2026년 중동 분쟁의 글로벌 농식품 영향(Global Agrifood Implications of the 2026 Conflict in the Middle East) 보고서’를 내놓았다. FAO보고서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글로벌 에너지와 식량 부문 전반에 장기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쿠웨이트 카타르 이라크 등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기본 식량의 70~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들 국가들이 밀과 쌀 설탕 식용유 등 기본 식량의 통로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 상태를 유지할 경우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대체 수입 경로를 찾아야 한다.
일부 곡물은 러시아에서 이란을 거쳐 육로로 이동하거나, 시리아·터키를 통해 이라크로 들어올 수 있지만 비용은 물론 위험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홍해 항구를 통해 수입을 늘릴 수 있지만 이 경로는 이란의 동맹세력인 후티 반군의 표적이 될 수 있다.
FAO보고서에 따르면 레바논과 예멘 등 중동지역 취약 국가들은 이미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겪고 있다. 레바논의 경우 전체 인구의 17%인 87만4000여명이 ‘위기’ 또는 ‘비상’ 수준의 식량불안 상태에 놓여 있다.
보고서는 오는 4~7월 사이 이 수치가 약 96만명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예멘의 경우 이미 1700만명이 심각한 급성 식량 불안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획기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한 수백만 가구가 기본적인 식량 수요조차 충족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이란전쟁의 불똥은 8000km 떨어진 한국의 농촌에까지 튀고 있다. 2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중동산 요소 가격은 3월 15일 기준으로 톤당 71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이란전쟁 전인 2월 말의 485달러 대비 47.4% 급등한 가격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면세유는 3월 21일 기준으로 리터당 1318원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달 28일 1122원에서 17.5% 오른 것이다. 우리 농민들은 치솟는 기름값에 트랙터나 경운기를 몰고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고, 파종기에 비료 물량은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하고 있다.
“해협 1년 봉쇄 땐 재앙적 상황”
글로벌 기업들도 이란전쟁으로 인한 세계 식량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질소비료 생산기업인 야라 인터내셔널(Yara International)의 최고경영자(CEO)인 스베인 토레 홀세테르는 14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1년간 봉쇄될 경우 재앙적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홀세테르는 “글로벌 지도자들은 식량 가격 급등으로 세계 최빈국들이 입게 될 타격을 더 늦기 전에 고려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료의 중요성을 감안해야 할 시점이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작물 수확량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은 지역분쟁이지만 전세계적 파급 효과를 지니고 있다. 그 영향은 곧바로 식량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홀세테르는 또 “일부 작물의 경우 비료를 제때 공급받지 못하면 첫 수확에서 최대 50%까지 생산량이 감소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걸프 지역에서 원자재 공급이 막히고 있는 데다, 공기 중 질소를 포집하는 데 필요한 가스 가격마저 급등하고 있다”면서 “비료산업이 이중 충격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황 레오 14세는 22일 베드로광장에서 “전쟁지역의 주민들에게 닥친 고통은 곧 인류 전체의 고통”이라면서 “적대행위를 멈추고 진정성 있는 대화와 모든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평화의 길을 열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란전쟁은 이미 인류 전체의 고통으로 번지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과 세계 7대 산유국 이란의 충돌은 자칫 ‘글로벌 확증 경제 파괴’로 치닫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촘촘한 공급망으로 연결된 세상에서 서로간 전쟁은 아둔한 자해행위다. 교황의 말씀대로 이번 전쟁은 “온 인류 공동체에 대한 하나의 스캔들”이다.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